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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철도, 바이칼여행지 이야기 2021. 10. 21. 00:44
사진출처 중앙일보 시베리아 횡단 열차 많이 알고 계시지요?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럽의 모스크바까지 9천여 킬로미터, 쉬지 않고 달려도 7박 8일이 걸리는데요. 대장정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구간 중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을 뽑으라면 바이칼 구간 입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한민족에게는 한이 서려있는 비운의 길입니다. 80여 년 전, 스탈린의 명령으로 연해주의 고려인들이 전답을 다 빼앗기고 중앙아시아로 내몰리게 되지요. 그들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화물칸에 실려 가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바이칼 호수를 훔쳐보았을 겁니다. 밤길을 내달릴 때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바람이 어찌나 매서운지 눈물마저 얼어붙었겠지요. 그 한숨과 탄식소리는 바이칼 호수에 스며들었을 겁니다. 역에서 내릴 때마다 가족들은 생이별을 해야만 했고 결국 다시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은 가족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훗날 소련이 붕괴되자 소수민족들이 분리 독립하면서 고려인들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등으로 흩어져서로 다른 국적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한민족의 뿌리라고 하는 바이칼 호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지요. 호수가 얼마나 큰지 남한 면적의 3분의 1 크기일 정도고, 호수라기보다는 바다에 가깝습니다. 바이칼 호수는 세상에서 가장 깊고 깨끗한데요, 눈으로 볼 수 있는 깊이가 무려 40m나 됩니다. 최고 수심이 1,742m인데 덕유산(1,614m)을 거꾸로 해도 잠길 정도로 깊지요. 전 세계인이 매일 500ml 생수를 한 병씩 마신다고 해도 40년이 걸릴 정도로 세계 최대의 저수량을 자랑합니다. 이 황홀한 호수를 멋지게 감상하려면 이르쿠츠크 역에서 출발하는 환바이칼 관광열차에 오르면 됩니다. 총 89km 거리를 8시간에 걸쳐 시속 20km로 느릿느릿 달리는데요. 바이칼호수의 서쪽 끝인 슬루 지얀 카부터 본격적으로 호수를 더듬어 갑니다. 코발트 호수, 파란 하늘과 구름 그리고 기차. 어느 곳이든 카메라를 들이대면 근사한 작품이 됩니다.
1891년부터 착공된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1900년 바이칼 구간만 빼고 동서 구간이 모두 완공되었습니다. 산악 지역에다 수심이 깊은 바이칼 구간에는 철로를 놓을 기술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돈을 댈 여력이 없었던 겁니다. 그러나 시베리아에 물자공급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쇄빙선입니다. 뽀르트바이칼에서 기차를 배에 싣고 바이칼 호수를 건넌 후 탄 호이 역에서 기차는 다시 선로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1903년~1904년 겨울에는 얼음이 너무 두꺼워 쇄빙선마저 운행하지 못하자 러시아인들은 뽀르트바이칼역에서 호수 건너편 바부쉬킨역까지 꽁꽁 언 호수 위에 빙상 철로를 놓았습니다. 1902년 슬루지얀카에서 공사를 시작했고 드디어 바이칼 철도가 완성되면서 시베리아 전 구간은 모두 연결되었습니다. 마침내 기차는 환바이칼 여행의 하이라이트 격인 빨라빈늬역에 닿습니다. 빨라빈늬는 중간역이란 의미로 환바이칼 구간 중 절반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말이 역이지 간이역에 불과한데요, 주민이라야 15명 전부입니다. 문명세계와 유일한 만남은 일주일에 2번씩 이렇게 관광열차가 들어올 때인데요. 전형적인 러시아 판잣집이 보이고요. 수영을 즐길 수 있는 모래 해변도 있습니다. 물이 차가워 몸까지는 담그지 않았구요 대신 바이칼 물을 들이켰습니다. 상쾌함이 폐부를 찔러댑니다.
다시 기차를 타고 달려봅니다. 하루 종일 바라본 바이칼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감동이 신기루처럼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 호수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그리고 전통 러시아 가옥을 닮은 뽀르트바이칼역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유람선에 올라타 리스트비앙카 항구에 도착해 이르쿠츠크 버스에 오르면 환바이칼 여행은 마침표를 찍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한번쯤 기회가 되실 때 가보시길 바랍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이 길 위에 카레이스키의 애환이 서려 있고, 한민족의 시원으로 여겨지는 바이칼 호수의 속 깊은 사연을 되새기다 보면, 같은 여행이어도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