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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한국적인 현대건축, 공간사옥과 포도호텔
    여행지 이야기 2021. 10. 21. 01:12

    공간사옥

    만약 혹은 외국인 친구와 하루의 시간을 보낼 여유가 생겼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한국적인 현대건축을 소개해 달라고 한다면 어떤 건축을 소개하고 싶습니까? 종묘, 경복궁, 한옥 마을 등은 전통건축이고, 현대건축을 소개해 달라고 하는 것이죠. 가장 한국적인 현대건축, 여러분들은 마땅히 떠오르는 건축이 있으십니까?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두 가지 건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공간사옥 입니다. 다양한 조사에서  건축 전문가들이 뽑은 최고의 한국의 근 현대건축에 당당히  1 에 뽑힌 건축입니다. 김수근 선생의 가장 대표작인 공간 사옥은 1970년대 초와 후반에 두 차례에 걸쳐 덧대어 지어진 검은 벽돌 건물로, 훗날 공간사옥 옆으로 김수근 선생의 제자인 고 장세양 선생이 유리 건물로 된 증축 건물도 설계하여 잘 어울려 배치되어있죠. 공간사옥은 밖에서 보면 좁고 긴 네모반듯한 덩어리들로 조합되어 있고, 외부 벽은 검은 벽돌로 쌓아 지은 지하 2층에 지상 5층 규모의 일반적 겉모습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매우 복잡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한층 한층 쌓아 건물을 완성합니다. 따라서 층별로 당연히 높낮이가 같죠. 하지만 공간사옥은 다릅니다. 서로 다른 높낮이를 갖는 열 개가 넘는 바닥 층이 내부 방들을 이루며 복잡한 계단길을 통해 유기적으로 이어집니다. 계단참 몇 개를 올라 다른 방들이 만들어지고 또 옆에 나 있는 몇 개의 계단참을 따라 또 다른 방이 높이를 달리하며 연결되곤 하죠. 그렇게 복잡한 방들이 구석구석 박혀 있지만 공간은 꼭 필요한 정도의 크기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층고를 낮게 해 아담하고 인간적인 척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높지 않은 천정, 손을 올리면 마치 닿을 듯한 크기, 두 손을 뻗치면 맞닿을 것 같은 양쪽 벽면, 크지 않은 공간의 분위기, 여러분은 무엇이 연상되십니까? 우리나라 옛 도시나 주거 속에 혼재해 있던  골목길을 현대적인 패턴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공간사옥은 한국적이라는 인간 척도 개념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곳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좁은 골목길을 통과해서 머무르는 작은 공간. 즉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궁극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김수근 선생의 건축개념입니다. 한옥이 마당을 기준으로 방과 방이 연결되는 동선이 짜인다고 생각할 때, 공간 사옥은  중간의 탁 트인 중정을 두고 각 공간들이 만나는 전통 한옥의 공간개념을 계승하고 있죠. 즉 공간 사옥의 건축물 자체는 조적 벽돌을 주로 사용한 현대적인 건축물이지만, 구성 요소 하나하나 살펴본다면 분명 방식은 다르지만 한국의 전통성의 명맥을 잇고 있는 건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간사옥은 주변의 도시 질서와 가로 풍경을 건축 공간 안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건축의 공동체성을 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수근의 설계에서 보이는 특징은 그런 관점에서 길과 건축과 사람과 주변 환경은 서로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하나가 되고, 실내 외로 이어지는 극적인 공간의 연속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 중심적인 척도로 공간을 분할한 아기자기한 규모의 내부 공간 구성, 외부공간에서의 막힐 듯 막히지 않는 마당 간의 연결 등으로 감동을 주는 진정한 한국성을 가진 건축인 것이죠. 형태가 아닌 공간개념에서 결국 한국이라는 전통의 계승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명작입니다.

     

    두번째 소개할 건축은 제주도에 있는  포도호텔 입니다.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한 작품입니다. 제주의 오름을 상징하는 지붕선, 포도 모양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포도호텔이죠. 제주 오름과 초가지붕의 부드러운 곡선을 주제로 만들어진 26개의 객실은  인공적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여 제주의 생태를 표현하고 있는 명작입니다. 포도 호텔은 특히 한국의 건축 양식 중 특히 제주도만이 갖고 있는 건축양식의 요소를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요, 제주도의 자연지형인 제주 오름과 바람이 강하게 부는 제주도의 특성 때문에 부드러운 곡면 형상의 초가지붕의 요소를 그대로 활용했다고 하죠.

     

    1층으로 나즈막히 배치되어있는 건물은 외부에서 보면 사실 그 진정한 가치를 못 느낄 정도로 아담하고 소박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내부 공간으로 들어가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곳이 먼저 복도입니다. 이 복도는 이타미 준이 골목길을 연상해서 표현한 것이고, 골목길 옆으로 집들이 붙어있는 형상을 표현한 것이죠. 그리고 그 집들 사이로 잠깐잠깐씩 보이는 틈들, 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복도를 환하게 해 주고, 공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소품 하나까지 섬세한 배려를 담고 있는 포도호텔의 내부는 하늘을 향하여 열려 있는 실내정원을 만나게 되는데, 호텔 내부와 외부가 연결되는 이곳은 주변을 흐르는 작은 물길이 감싸는 자리로 계절 따라 다른 식물이 연출하는 분위기가  동양 전통 정원의 성숙한 아름다움을 현대 건축의 세련미로 표현한 것입니다.  한편 포도 모양을 한 그 집들 하나하나가 실제로 호텔 객실이 되었고요, 그 객실로 들어가 보면, 마당이 있고, 대청마루 건너서 방들이 있는 공간적 위계를 그대로 살려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그야말로 한국적인 주택건축을 호텔 안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한 느낌입니다. 한편 객실 바깥으로 펼쳐진 앞마당의 조경들은 아주 소박하게 꾸며져 있고, 대청마루를 넘어서 마당이 보이고, 마을에서 집들이 그저 편안하게 모여있는 듯한 느낌을 그대로 살려놓았습니다. 이타미 준은 온갖 시각적 언어로 표현되는 현대건축의 조형의 순수성을 강조하려면 그 토지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문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추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진정으로 한국성을 표현한 현대건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와를 얹고 전통문양을 넣어야만 한국적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허나 외부의 형태가 아닌  공간의 표현 혹은 조형미 등의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얼마든지 한국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다 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공간사옥이나 포도호텔은 그 표현방법은 사뭇 달라도, 그 개념은 유사합니다. 우리나라의 골목길, 그리고 전통한옥의 공간적 체험을 그대로 살린 두 현대건축은 실로 한국을 대표하는 명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태나 장식만을 볼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 없는 우리 고유의 정서와 느낌을 창의적으로 표현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눈을 홀리는 건축보다 마음을 홀리는 건축이 보다 더 한국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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