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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영에서의 직관과 감각
    경제 이야기 2021. 10. 22. 06:27

    경영에서 직관과 감각은 중요합니다. 많은 기업의 성공 사례들이 양적인 원가 절감이나 효율 향상보다는 프레임과 규칙을 뒤집는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죠. 넷플릭스의 비즈니스 모델도 그 한 예입니다. 기존의 강자 블록버스터와는 딴판으로 구독 모델을 제시한 넷플릭스는 연체료를 없애고 타깃 고객으로 마니아 계층을 조준하는 등 대담한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방향 전환이 성공 요인의 전부였을까요? 저명한 경영분석가 토머스 데븐포트는 방향 전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구독 모델이라면 구독료를 얼마로 해야 할까요. 영화 마니아를 타깃으로 한다면, 영화 자원의 비중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요? 전략의 방향이 정해져도 이를 실행하려면 양적 분석은 필수입니다. 좋은 전략이라도 분량과 타이밍의 조절이 잘못되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데븐포트는 넷플릭스의 성공은 비즈니스 모델을 바꾼 발상의 전환보다도 그에 따른 일련의 크고 작은 양적 의사결정의 정확성에 기인한다고 말합니다. 직관과 분석은 대립되는 능력이 아닙니다. 직관이 앞에서 끌고 분석이 뒤를 받치는 것이죠.

     

    경영에서 정교한 양적 분석을 시도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수학적 기법이나 컴퓨터가 충분히 발달한 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까마득한 옛날의 전쟁에서부터 수학적 분석은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전략"이라는 말은 20세기 후반에 널리 쓰이게 된 신조어입니다. 그렇다면 고대 동양에서는 전략의 개념이 없었을까요. 삼국지에 보면 전략에 해당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것이 "계략"입니다. 계는 계산한다는 뜻이고 략은 땅을 측량하여 구획을 정한다는 뜻입니다. 전략이라는 말보다도 더욱 양적 분석을 강조한 말입니다. 실제로 고대의 위대한 전략가들은 수학의 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두 가지의 사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세계의 전쟁사에서 단연 최고의 전투로 인정받는 것이 바로 한니발이 지휘한 카르타고군과 로마군의 칸나에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현대 웨스트포인트 전술 교범에도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 한니발은 단순한 기하학적 계산을 적용했습니다. 그것은 원의 면적은, 반지름이 1보다 큰 한, 원주의 길이보다 더 큰 값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병사를 한 명씩 한 줄로 세우면 긴 원주를 만들 수 있지만 이들로 원의 내부를 채우려면 훨씬 더 많은 수가 요구됩니다. 칸나에 평원에서 카르타고와 로마가 맞붙었을 때 로마군은 8만 6천 명, 카르타고군은 5만 명이었습니다. 이러한 병력의 열세를 어떻게 극복할까요? 한니발은 바로 원의 면적과 원주의 원리를 적용합니다.

     

    한니발은 카르타고군을 얇고 길게 포진시켰습니다. 병력이 많은 로마군은 겹겹이 중무장 밀집대형을 취했죠. 정면충돌한다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니발은 중앙의 정예병을 이끌고 볼록하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것은 무모한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한니발은 로마의 반격에 후퇴하며 서서히 물러났습니다. 볼록하던 진영이 오목하게 되면서 마치 보자기로 싸듯이 로마군을 가운데에 몰아넣었죠. 동시에 좌우익의 기병이 뒤로 돌아 후방을 차단했습니다. 창과 방패로 무장한 보병의 육박전에서 군대가 한 덩어리로 뭉치면 어떻게 될까요. 원주를 이룬 카르타 고군은 모두가 공격을 가하지만, 아군들 속에 파묻힌 로마군은 무력화됩니다. 원주가 원을 이기는 것입니다. 한니발은 간단한 수학적 원리를 이용하여 적을 무력화시키고 아군의 전력은 극대화했던 것이죠.

     

    그런데 칸나에 전투의 진영도를 보면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충무공의 학익진인데요. 진영의 그림이 칸나에 전투와 거의 흡사합니다. 학의 날개 모양으로 배를 횡대로 배열하고 일본군의 배를 가운데 몰아넣는 것입니다. 한산대첩은 바다의 칸나에 전투라고 할 만한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충무공의 승리에는 원과 원주의 기하학 외에 또 하나의 기하학 원리가 동원되었습니다. 당시 조선 수군의 대포는 일본에 비해 사정거리가 더 길었습니다. 대단한 경쟁우위였지만 이를 이용하려면 적 함대와의 거리를 정확히 알아야 했습니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강점은 사라지죠. 전투 중인 배 위에서 어떻게 거리를 잴 수 있을까요? 충무공의 배에는 도훈 도라는 전문가가 탑승하고 있어 측량을 전담했습니다. 당시 조선의 수학책에 "망해도 술"이라는 거리측정법이 알려져 있었고, 이를 통해 배의 거리를 측정했던 것입니다. 그 원리는 삼각형의 닮은꼴을 이용하는 것이었죠. 그림에서처럼 대나무의 높이를 재기 위해 중간에 작은 막대를 세우고 사람이 엎드려 막대와 대나무의 꼭대기가 일치하는 지점을 찾는 것입니다. 이 경우 8:36의 비율이 적용되어 나무의 높이는 45가 됩니다. 이것은 보통 섬의 높이를 재는 기술이었는데, 적선과의 거리를 재는 데에도 쉽게 응용할 수 있었습니다. 충무공은 이러한 수학적 계산을 통해서 완벽한 경쟁우위를 확보했던 것입니다.

     

    고대 로마나 임진왜란에서도 수학적 분석은 승리의 원천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눈부신 경영 분석의 발전은 이러한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경영분석의 발전 과정을 돌이켜보고자 합니다. 현재의 문제를 잘 분석하기만 하면 되지 굳이 분석의 역사까지 알 필요가 있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현대적 분석 기법의 뿌리는 과거로부터 한 걸음씩 전진해 온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를 아는 것은 기초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 분석의 기본이 되는 수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대븐포트는, 분석능력이 기업의 경쟁력이 되려면 조직 내 소수 전문가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구성원이 분석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학이라는 것이 결코 따분하고 단조로운 계산 작업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수학적 기법들은 절박한 전략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고안되었습니다. 완성되고 난 뒤의 수학은 완전무결한 논리 체계지만,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반전과 충격으로 가득 찬 드라마를 닮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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