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스 트레킹 여행, 오트루트여행지 이야기 2021. 10. 22. 23:42
흔히 야생화 가득한 초원이 펼쳐지면 ‘알프스 같다’는 비유를 쓰곤 하는데요. 비유를 넘어 실제 지명으로‘알프스’를 사용한 곳도 많습니다. 일본의 ‘북 알프스’, 뉴질랜드의 ‘서든 알프스’, 우리나라는 ‘영남알프스’가 대표적이지요. 그런데 앞 서 언급했던 장소들이 진짜 알프스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제 대답은 ‘천만에요’입니다. 오늘은 알프스에서도 감히‘이것이 알프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최고의 트레킹 루트! 알프스의 정수 오트 루트입니다. 알프스엔 몽블랑을 비롯한 수많은 트레킹 루트가 거미줄처럼 깔려있습니다. 그중에서, 오트 루트를 선택한 이유는 꽃피는 초원뿐 아니라 히말라야처럼 웅장한 산, 그리고 거친 빙하까지 사계절을 다 만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듯 만만한 코스는 아닙니다. 오트 루트의 ‘오트’는 프랑스어로‘높은’이란 뜻으로, 난이도가 좀 높은 트레킹 코스라 할 수 있는데요. 오르는 길이 다소 험난하긴 하지만 흘린 땀방울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선물 받을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합니다.
사진출처 신발끈여행사 경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오트 루트는 몽블랑이 자리한 프랑스 샤모니에서 출발해, 마터호른을 품은 스위스 체르마트에서 끝나는 코스입니다. 거리는 약 188㎞, 완주하려면 13일쯤 걸리는 장거리 코스인데요. 그중에서도 제가 소개할 코스는 호텔이나 텐트가 아닌 산장에서 숙박하며 보낼 수 있는 2박 3일 코스입니다. 트레킹의 첫 출발지는 1924년 제1회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프랑스 샤모니입니다. 첫날밤을 보낼 몽포트 산장으로 가려면 러샤블로 이동해 베르비에 곤돌라를 타야 하는데요. 상부정류장에 내리니 고도가 무려 2195미터나 됩니다. 공기 또한 한국과는 다른 서늘함이 느껴졌는데요. 내리자마자 산장으로 가기보단 숨은 비경을 찾아 걸음을 옮겼습니다. 손을 잡고 걷는 가족, 자전거를 타는 아이 등 가볍게 하이킹 나온 주민들을 따라 조망 좋은 산 허리길에 올라봅니다. 그림처럼 펼쳐진 아랫마을을 구경하며 2시간쯤 걸었을까요? 작은 봉우리들 사이에 숨겨진, 브우호수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눈부신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는 객지에 온 첫날의 긴장감을 깨끗이 씻겨주었습니다. 트레킹 첫날의 경우 많은 트레커들이 장시간 비행으로 인한 피곤함 때문에 숙소로 바로 향하곤 하는데요. 조금 지칠 순 있겠지만, 알프스의 모습이 고스란히 품고 있는 브우호수 만큼은 꼭 만나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호수 뒤 가파른 고개를 넘자 몽포트 산장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돌로 지은 모습이 매우 고풍스러워 사실 시설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요.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산 중턱에 있는 다른 산장들에 비해 욕실이나 주방이 매우 깔끔한 상태여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산장만큼이나 만족스러운 것은 바로 산장지기 그라티앙 이었는데요. 부탁하는 것마다 거절하지 않고 모든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그는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나, 그가 트레커들을 위해 준비한 파스타는 일류 레스토랑 음식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죠. 아무래도 그날의 맛을 좌우한 건, 그의 요리 실력도 있었겠지만 알프스 산꼭대기에서 석양을 마주하며 먹던 분위기가 8할은 차지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프라프 레리 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트 루트 중 가장 높은 고도 2900m 고개를 넘어야 하는 이 코스는 약 8시간을 걸어가야 하는데요. 험한 코스일수록 스틱을 챙겨 가시길 추천드립니다. 스틱의 경우 무릎이 받는 하중을 약 1/3까지 분산시켜주기 때문에 고난도 산행에 꼭 필요한 동지라 할 수 있습니다. 실오라기처럼 좁아 보이던 길은 다행히 한 사람은 지날 만큼은 됐는데요. 아슬아슬한 모퉁이를 돌아서니 길섶에 야생 생화가 한가득입니다. 가끔 오르는 것에 치중해 경치를 놓치는 분들도 많은데요. 알프스처럼 꽃밭에 서서 우뚝 선 설산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기에 이곳에서만큼은 급한 마음을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야생화 꽃길이 끝나면 눈 덮인 세 개의 고개를 연달아 넘어가야 합니다. 이번엔 언제 꽃길이 있었냐는 듯 화성 표면과 같은 거친 길이 펼쳐지는데요. 이곳처럼 힘든 코스를 걸을 땐 자연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찾으려 부단히 애씁니다. 사진 속 이 날도 고도 2000m 이상의 험한 코스이지만, 고도이기 때문에 습도가 높지 않아 트레킹이 상쾌하다, 상쾌하다,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긍정을 불어넣었던 기억이 나네요. 바라만 봐도 좋은 야생화들과, 초록 빛깔 초원, 하얀 설산과 빙하까지 모두 만나고 나면 느지막이 프라프 라레 산장에 닿게 됩니다.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별들이 밤하늘에 예쁘게 수를 놓고 있는데요. 이렇게 여유 있게 홀로 밤하늘을 감상해본 것이 언제인지. 나무 흔들리는 소리, 사람들이 웃는 소리, 그리고 숨소리까지, 작은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알프스의 마지막 밤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자연과 하나 되어 숨 쉰다는 말을 이럴 때 하는 거겠죠? 아쉬운 밤을 뒤로하고 다음날, 산장에서 5시간 남짓을 걸어 알프스 특유의 전통가옥이 모여 있는 아롤라 마을에 발길이 닿으면서 이번 트레킹이 마무리됩니다. 2박 3일 알프스 트레킹 어떠셨나요? 저는 이런 분들에게 알프스 오투 루트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가정이나, 회사... 세상에서 맡고 있는 직책과 위치 때문에 어깨가 무거우신 분들!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해 오트 루트로 떠나 보십시오. 한 걸음 한 걸음 가파른 길을 오를 때마다 내뱉는 나의 거친 숨소리와, 피부에 와닿는 자연의 숨소리 사이에서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아름다운 신의 건축물 알프스가 여러분의 어깨의 짐을 덜어줄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