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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 여행, 화암사 신선대
    여행지 이야기 2021. 10. 19. 09:12

    가을 설악산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지만 밀려들어오는 인파 때문에 제대로 된 단풍을 감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거기다 대청봉까지 거리도 만만치 않아 체력이 따라야겠지요. 수월하게 단풍숲을 거닐며 웅장한 설악산을 품에 안고 싶다면 강원도 고성군 화암사 신선대(해발 645m)에 오르면 됩니다 . 산수화에 등장할 것 같은 장쾌한 설악의 준봉과 동해바다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지요. 화암사, 신선대, 신선계곡을 거쳐 다시 화암사까지 한 바퀴 돌면 총 4.1km 자분자분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볼 빨간 사춘기 마냥 수줍게 물든 가을산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이곳을 지금은 북설악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예로부터 금강산의 영역이었습니다. 금강산 1만 2천 봉에서 남쪽 첫 번째 봉우리인 신선봉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금강산 남쪽에 있는 첫 번째 사찰이 화암사입니다. 금강산 화암사(金剛山 禾岩寺)는 한국전쟁의 참화로 파괴되어 옛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저 세월의 때가 잔뜩 묻어있는 부도 15기만이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지요.

     

    화암사 일주문을 지나 숲길을 거닐다 보면, 신선대에 오르는 등산로 입구가 나타납니다. 오솔길을 따라 300여 미터쯤 지그재그 산길을 오르면 왕관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바로 화암사 터줏대감 수바 위입니다. 수바 위에 서서 지팡이를 세 번 흔들면 쌀이 쏟아져 나왔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데요. 욕심 많은 객승이 더 많은 쌀을 얻으려고 6번을 흔들자, 바위에서 피가 쏟아졌고, 그 이후에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일에 욕심이 앞서면 화를 부르는 법이지요. 수바 위를 지나 촉감 좋은 흙길을 밟으며 사부작사부작 걸어보세요. 곱게 물든 단풍이 절로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그 시절 우리네 청춘도, 우리네 인생도 이렇게 찬란하고 고운 시절이 있었겠지요.

     

    자박 자박 걷다 보면 나무는 온 데 간데없고 탁 트인 하늘이 나타납니다. 그 아래 항공모함 같이 거대한 암반인 신선대가 펼쳐지는데요. 신선대 입구에는 하늘 향해 우뚝 솟은 성인 바위가 서 있습니다. 어진 이가 나타나 세상을 구제한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지요. 동해의 파란 바다를 응시하고 있어 더욱 신성하게 보입니다. 뒤쪽으로는 운무에 감싸인 신선봉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신선대 암반은 비바람에 의한 풍화가 지금도 진행 중이어서 그로 인한 물웅덩이가 많이 보이는데요.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생명력을 이어나간 소나무가 경외스럽습니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활짝 웃고 있는 야생화도 대견스럽지요.

     

    신선대에서 가장 경치가 탁월한 곳은 암반 위에 혹처럼 솟아오른 낙타바위가 있는 이곳입니다. 우뚝 솟은 바위는 마치 세상을 호령하고 있는 장군 같네요. 여기서 한 발자국만 뛰면 공룡의 등뼈 같은 울산바위에 닿을 것 같습니다. 저 아래 미시령을 오르는 승용차가 성냥갑처럼 작게 보입니다. 그 위쪽으로 미시령 옛길이 구절양장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청초호, 영랑호 그리고 속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 특급 전망대에 가부좌를 트고 사방을 음미해보니 마치 제가 신선이 된 기분입니다.

     

    하산은 계곡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은데요. 울긋불긋 단풍이 금강의 연봉에 물들어 있어 몇 번을 멈추었는지 모릅니다. 절 앞으로 흘러가는 신선계곡의 맑은 물은 신선봉에서 발원해 장장 30리에 걸쳐 곳곳에 소와 폭포를 만들어내지요.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들이 깨끗한 공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그야말로 선승지입니다. 힘든 줄도 모르고 2시간을 타박타박 걸으니 다시 화암사가 보입니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계절의 변화에 둔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저 ‘거참 시간 한번 빠르네 벌써 가을이야’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는 세월은 결코 잡을 수 없지만 아름다운 계절이 주는 호사는 놓치지 말고 마음껏 누려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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