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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갑사 가는 길여행지 이야기 2021. 10. 19. 09:07
“날은 시나브로 어두워지려 하고 땀도 가신지 오래여서, 다시 산허리를 타고 갑사로 내려가는 길에, 눈은 한결같이 내리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린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을 기억하시는지요? ‘춘마곡 추 갑사’란 말처럼 갑사는 가을에 볼 만하지만 실은 봄 풍경 역시 황홀합니다. 특히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충청남도 공주 , 갑사 가는 길은 온통 황매화로 노란 물결 이 이어집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오리 숲이 길게 이어집니다. 이곳 오리숲은 3,500제곱미터로 국내 최대 황매화 군락을 자랑합니다. 워낙 청정한 숲길이 어서 걷는 자체만으로도 오욕이 떨어져 나가고 마음이 정화되는데요. 우리네 인생도 오리숲길만큼이나 정갈했으면 좋겠습니다. 키 큰 나무 아래 노란 꽃들이 무리 지어 피고 있는데요.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해주는 황매화입니다. 4월 중순부터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꽃이 한 달간 피는데요. 5장의 꽃잎이 노랑 저고리처럼 펼쳐져 있고요. 바늘 같은 수술이 빼곡합니다. 잎과 함께 꽃이 피기 때문에 매화라는 이름을 얻었지요. 암행어사 어사화 위에 꽂던 꽃이 이 황매화랍니다. 요즘은 꽃잎이 여러 겹인 개량종 겹황매화를 볼 수 있지요. 꽃향기 맡으며 오리숲을 거닐다 보면 어느덧 갑사에 닿게 됩니다. 누각 한가운데 큼직하게 쓰인 '계룡갑사'의 현판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으뜸 甲' 자에 더욱 무게감이 실려 있지요. 백제 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알려진 갑사는 천년 동안 무사히 이어오다가 정유재란으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이후 다시 중수했기에 백제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기 위해 선조 때 만들어진 갑사 동종은 사연이 깊습니다. 일제 강점기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공출되었다가, 광복 후 갑사로 옮겨왔기에 우리 민족과 수난을 함께한 역사적인 종이지요. 대웅전 왼쪽으로 가면 멸종위기로 알려진 흰 진달래가 자라고 있으니 귀한 꽃 놓치지 마십시오.
갑사가 더욱 성스러운 것은 이 땅을 지켰던 호국사찰이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갑사는 왜군과 대항하는 승병궐기의 거점이 되었는데요. 조용히 암자에서 수행하던 영규대사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700여 명의 승려를 이끌고 충청도 의병장 조헌과 연합해 청주성을 수복하고 충청도를 지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금산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700여명의 승병과 함께 장렬하게 순국하고 맙니다. 영조 때에 이르러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격퇴한 공을 기리기 위해 갑사에 표충원을 세웠는데요. 이곳에는 영규대사, 서산대사 등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대적전을 가려면 계곡을 건너야 합니다. 계곡 건너는 입구에 공우탑이 서 있는데요. 갑사에서 짐을 져주며 고생했던 소가 죽자, 스님들이 소의 공을 기려 탑을 세웠습니다. 미물인 가축에게도 정성을 쏟는 마음 씀씀이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계곡을 건너면 3칸짜리 아담한 대적전이 보입니다. 대적전 앞에는 고려시대 만들어진 갑사 부도가 탑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데요. 기왓골 모양이 강조된 갑사 부도는 율동적인 조각에서 힘이 넘칩니다. 다시 대숲터널을 지나면 갑사 철당간이 보입니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고 합니다. 원래 직경 50cm 철통 28개를 이어 만들었는데 고종 때 네 마디가 부러져 현재는 24개만 남아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때 조성되었으니 천년 넘게 계룡산을 지켜온 셈이지요. 갑사로 가는 길도 내려오는 길도 황매화가 피어 있습니다. 노란 꽃물 머금은 황매화처럼 세상사 모든 인생이 향기롭길 바라봅니다.황매화의 꽃말은 ‘숭고함’입니다. 청정한 오리숲에서 황매화 꽃향기를 맡으며 거닐어 보십시오. 자연의 숭고함이 여러분의 가슴에 머물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