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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경쟁은 성장을 위해 필수경제 이야기 2021. 10. 20. 23:03
사진출처 놀판 1992년 제임스 폴리 감독이 연출한 영화 <글렌 개리 글렌 로스>에서 야전용 철제 책상이 놓인 음산한 부동산 사무실에서 관리자가 영업 실적 부진을 이유로 영업사원들을 꾸짖는데요. 다음 분기에 영업 실적이 가장 좋은 사원에게는 캐딜락을, 2등 사원에게는 맛있는 스테이크를 썰어 먹을 수 있는 포크와 나이프를, 나머지 사원에게는 해고를 선물로 줄 것이라고 소리치면서 사무실을 나갑니다. 그리고, 영업사원들은 고개를 숙이죠. 영화 속의 파괴적인 경쟁 문화는 단기적인 영업 실적 향상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최근 기업과 사회의 구성원들이 극심한 경쟁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경쟁은 구성원의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쟁을 유도하는 기업과 사회의 분위기는 죄악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정 수준의 건강한 경쟁은 기업과 사회가 성장해가는 데 필요한 동력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범죄율과 이자율 간의 관계를 고찰한 부크홀츠 가설은 경쟁이 성장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설명하는데요. 경제가 침체되면 범죄율이 증가한다는 범죄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통계를 살펴보면 1930년대 대공황과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오히려 범죄율이 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낮은 금리에 있습니다. 경기가 하강할 때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낮춰서 기업과 가계의 투자를 유도하죠. 낮은 금리는 시장 주체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 심리를 높여줌으로써 시장 주체들의 건강한 경쟁을 유도하여 범죄율을 낮추는 효과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범죄율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질 때 높아지기 때문이죠.
1923년부터 1937년까지 15년간 GM의 최고경영자로서 전성기를 이끌었던 알프레드 슬론의 사례를 통해서 건설적인 경쟁의 필요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슬론이 졸업한 MIT 경영대학이 훗날 슬론대학으로 이름이 바뀔 만큼 그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그리고 자선사업가로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죠. 슬론은 GM의 최고경영자로 재임하면서 GM 내에 다섯 개의 독자적인 브랜드, 쉐보레, 폰티악, 올즈모빌, 뷰익, 캐딜락을 개발하는데요. 브랜드 별로 연구개발, 디자인, 마케팅 등의 기능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면서 브랜드 간 경쟁을 유도합니다. 그러면서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브랜드 간 적극적인 협업을 유도했죠. 다섯 개의 독자적인 브랜드는 협업과 경쟁의 균형적 접근을 통해서 건설적인 경쟁 구도를 만들어냄으로써 GM의 비약적인 발전을 견인합니다.
그리고 GM은 브랜드 간의 파괴적인 경쟁으로 인한 자기 잠식을 피하기 위해 브랜드 별로 제품의 디자인과 사양을 차별화하여 서로 다른 고객군을 공략합니다. 예를 들면, 쉐보레는 역동적인 디자인, 낮은 사양과 가격을 기반으로 청년층을 공략하고 캐딜락은 중후한 디자인에, 높은 사양과 가격을 통해서 중장년의 고소득층을 공략합니다. 이에 따라 20세기 중반 GM의 다섯 개 브랜드는 미국인들에게 소득 수준과 함께 올라가야 할 사다리처럼 여겨지기도 했죠. 하지만 슬론이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난 뒤, 1970년대부터 스며든 왜곡된 평등주의가 1980년대로 이어지면서 브랜드 간, 부서 간, 나아가서는 개인 간 경쟁이 죄악시되는 조직 문화가 뿌리내리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각각의 브랜드가 독자적으로 운영하던 디자인, 연구개발, 마케팅 등의 기능을 통합하여 운영하면서 브랜드 간 건설적인 경쟁 구도가 와해되었고요. 결국 각각의 브랜드는 차별성을 잃고 자기 잠식이라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GM의 경쟁력은 악화 일로를 걷습니다. 그리고 1984년에는 일자리은행 제도가 생겨나면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를 당한 종업원들이 퇴사 이후에도 예전 임금의 95%까지 받을 수 있게 되는데요. 2005년 기준, 일자리은행에 가입된 노조원 수가 1만 2000명에 달하고 이들의 1인당 수령액이 1년 평균 1억 원 정도에 이르면서 GM은 인건비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되죠.
몇 해 전,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 신입생 OT에서 원장이 강연한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두 학생이 야영을 갔다가 그리즐리 곰을 만납니다. 도망가기 위해 신발 끈을 동여매는 학생에게 다른 한 학생이 “신발 끈을 동여매고 달려도 우리는 곰보다 빠를 수 없어”라고 말하자, 신발 끈을 동여매던 학생이 “최소한 너보다 빨리 뛰면 곰이 널 잡을 테니 살아남을 수 있겠지”라며 계속 신발 끈을 동여맸다고 합니다. 구성원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파괴적인 경쟁이 아닌 구성원의 역량을 향상해 조직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조직의 성과를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건설적인 경쟁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곰에게서 먼저 도망치기 위해 팀원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곰의 동태를 빨리 파악하고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팀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경쟁, 그래서 팀원 모두가 곰의 공격으로부터 목숨을 구하는 경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은 경쟁에 대한 왜곡된 시선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적절한 경쟁은 성장을 위한 필수 동력입니다. 단, 공정한 기준에 의한 과정을 통해 경쟁하고, 패하더라도 다시 새로운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경쟁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