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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진 여행, 다산 정약용의 흔적
    여행지 이야기 2021. 10. 19. 08:54

    강진군 로고

    정약용의 유배지, 강진

    전라남도 강진을 가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200년 전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가서 머물렀던 강진에는 그의 흔적들이 스며있습니다. 다산의 발자취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힘겨웠던 마음이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정약용의 유배

    1801년 다산은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를 옵니다. 오갈 데 없는 다산의 딱한 사정을 안 주막집 주모는 그에게 따뜻한 밥과 골방을 내주었습니다. 그녀의 보살핌으로 다산은 몸을 추슬렸고 그녀의 한마디에 다시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 그리 헛되이 사시려 하십니까?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다산은 아동용 한문교재인 ‘아학편훈의’를 저술해 동네 아이들을 모아 공부를 가르쳤는데 그 소문을 듣고 젊은이들이 모이면서 강진의 6 제자를 배출하게 됩니다. 훗날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의 저서 500여 권의 급자탑은 쌓을 수 없었을 겁니다. 다산은 4년간 살았던 허름한 골방을 사의재(四宜齋)”라 칭했습니다. 생각은 맑게,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적게, 행동은 무겁게 네 가지를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지요. 오늘날 이곳을 찾으면 주막과 우물 그리고 사의재를 복원해 놓았습니다.

    다산초당과 소나무 숲길

    여기서 차를 타고 20여 분 가다 보면 만덕산 자락에 자리한 다산초당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10여분 쯤 걷다 보면 본격적으로 소나무 숲길이 나오는데요. 묘하게도 땅속에 있어야 할 소나무 뿌리가 지상으로 뻗어 나와 있어 도저히 뿌리를 밟지 않고서는 다산초당에 오를 수 없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이 뿌리야 말로 유배시절 다산의 인고와 눈물의 상징물이라 표현하면서 이 길을 ‘뿌리의 길이라 명명했는데요. 숲길을 5분쯤 오르면 다산이 10년 6개월을 보냈던 다산초당이 나옵니다. 마루에 앉아 동백숲과 대숲을 감상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마당에 놓인 널찍한 바위는 솔방울을 태워 차를 달였던 바위인 다 조고요, 다산이 손수 가꾼 연지석가산을 감상해도 좋습니다. 초당 뒤쪽 바위에는 ‘정석’이란 글씨는 다산이 손수 쓰고 정으로 새긴 것으로 전해집니다.동암은 다산이 2천 여권의 책을 갖추고 기거하며 손님을 맞이한 장소인데요. 다산동 암(茶山東庵)의 현판은 다산의 글씨를 집자해 만들었고요. ‘보정 산방(寶丁山房)의 현판은 평소 다산을 존경한 추사의 글씨입니다. 천일각에서 바라본 강진만 또한 풍경이 그만인데요. 다산은 아마도 바다를 바라보며 형 약전을 그리워했을 겁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숲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는 800미터 30분 정도 소요되는데요. 천천히 다산이 갔던 유배길을 함께 걸어보세요. 그의 걸음은 처절했지만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숲’에 선정될 정도로 운치가 있습니다. 대나무, 동백나무, 비자나무 등 난대림 속을 거닐어보세요. 특히 야생차의 향기가 코끝을 자극합니다. 이 길은 제자이자 친구인 혜장 스님과 초의선사를 만나는 인문학의 길이기도 하지요.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부드러운 흙길을 거닐어보세요. 야트마한 고개를 넘으니 만덕산의 넉넉한 산세가 품에 안깁니다.

    강진의 동백숲과 백련사

    그 아래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된 동백숲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2~300년 수령의 동백 1500여 그루가 빼곡해 한낮에도 캄캄할 정도지요. 줄기는 천태만상의 얼굴처럼 울퉁불퉁한데요. 이는 상처 난 부위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내 품은 수액이 굳어져 만든 형상입니다. 3월 말에는 동백꽃이 나무에 매달려 장관인데요. 4월 초가 되면 동백은 머리채 떨어져 붉은 양탄자가 되어 바닥에 깔리게 됩니다. 기품 있는 동백과 고즈넉한 백련사 부도탑이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내지요. 신라 말에 창건한 백련사는 우직한 대웅보전이 볼만한데요. 현판을 유심히 살펴보면 ‘대웅’과 ‘보전’이 두 쪽으로 나뉘어 있으며 가운데 공포가 튀어나온 것이 특징이지요. 대(大) 자를 자세히 보면 한 남자가 힘차게 걷는 모습이 보이시나요?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의 글씨입니다. 만경루 창문에서 배롱나무와 강진만 일대가 보이시나요? 네모난 프레임이 마치 액자를 걸어 놓은 것 같습니다. 다산의 인생이 나락에 빠졌을 때 주모의 따뜻한 배려가 없었다면 다산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세상이 매몰차게 보이고 소외감을 느낀다면 강진을 찾으십시오. 사의재 주모가 따끈한 아욱국을 끓여줄 것이며 다산이 사의재에서 나와 술잔을 건넬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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