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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정한 취미란?
    인문학(humanities) 2021. 12. 15. 22:49

    여러분은 새로운 사람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확인하시나요?

    아마도 직업이 아닐까 합니다.

    직업을 알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많은 정보가 딸려 오니까요.

    직업에 따라 말투나 옷차림새가 다릅니다.

    유치원 선생님의 말투와 변호사의 말투는 확실히 다르죠.

    세일즈맨과 연구원의 옷차림새 역시

    스타일이 매우 다릅니다.

    하지만 직업만으로는 외면 파악 정도만 할 수 있을 뿐

    그 사람에 대해 충분히 알 수는 없습니다.

    직업에 따른 외면은 사실

    직업이 요구하는 연출된 자아에 불과하니까요.

    개인의 더 많은 특성은

    직업상의 활동이 아닌 자유로운 활동,

    바로 취미를 통해 드러납니다.

    의사 가운을 벗은 밤에

    멋지게 색소폰을 부는 의사 선생님,

    법복을 갈아입고 주말에 탱고를 추는 법조인이라면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훨씬 더 많이 파악할 수 있겠죠.

    이렇듯 취미는 직업보다 훨씬 더 많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본래 취미는 '귀족의 놀음'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예제 사회였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귀족들이 직업이 없었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특권 신분인 이들은

    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었고,

    귀족은 곧 직업을 갖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의미했죠.

    그럼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이들은 '디아고게'를 통해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디아고게'란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할 수도 있는

    귀족들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일을 할 필요가 없기에

    하루 종일 술이나 마시고

    도박이나 하는 귀족들이 대부분인데,

    만약 어떤 귀족은 시를 쓰고 문학을 읽고 음악 감상을 하고

    자신의 체력을 다지기 위해서 운동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고 가정해보죠.

    누가 더 멋지다고 평가받을까요?

    당연히 인생을 탕진하지 않는 사람이겠죠.

    때문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선택적으로 할 수 있는 행위, 즉 디아고게가

    한 사람의 귀족적 우아함을 표현해주는

    좋은 수단이라고 봤습니다.

    이 디아고게라 불린 행동이 바로 오늘날 '취미'인 것이죠.

     

    사실 취미는 남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소극적 활동이 아닙니다.

    어떤 취미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고상함이 좌지우지될 정도로

    취미는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시켜주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누군가는 취미가

    나의 계급을 타인의 계급과 구별시켜 준다고까지 합니다.

    바로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주장입니다.

    부르디외는 개인의 취미가

    개인 특성의 산물이기보다는

    계층, 계급적 요인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는데요,

    이를 보여주기 위해 쓴 책이 바로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 <구별 짓기>입니다.

    부르디외는 취향, 취미가

    계급에 따라 어떻게 차별화되는지를

    방대한 자료를 제시하며 설명했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프랑스 사람들의 여가활동 조사였습니다.

    여유 시간이 있을 때

    사람들이 무엇을 하면서 보내는지 조사한 것이죠.

    현대 프랑스인의 디아고게를 확인한 셈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사람들의 기호가 경제적 형편, 학력 수준에 따라

    아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그는 책에 이렇게 기록했죠.

    "여러 조사 결과를 보면 문화적 실천, 문학, 회화,

    음악에 대한 선호도는

    교육 수준과 이차적으로는 출신 계급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취향은 '계급'의 지표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부르디외가 제시한 예를 들어 볼까요?

    학력이 높지 않고 육체노동이 직업인 사람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외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선호해도

    요한 슈트라우스의 잘 알려진 '다뉴브 강의 잔물결'같은

    왈츠 곡을 좋아합니다.

    반면 교육 수준이 높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에릭 사티의 '3개의 짐노페디'와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프랑스만 그럴까요?

    저는 취미에 대한 부르디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오래된 영화 <맨발의 청춘> 대사가 떠오릅니다.

    엄앵란씨와 신성일 씨가 주인공으로 나온 <맨발의 청춘>은

    계급적 처지가 다른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다룬 로맨스 영화인데요,

    신성일씨는 노동자 계급 청년이고

    엄앵란 씨는 부잣집 외동딸입니다.

    둘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서로를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시간 있을 때 뭐하세요?"라고요.

    신성일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전 자기 전에 권투잡지를 보고 위스키를 마십니다"

    엄앵란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성경책을 읽거나 베토벤을 들어요"

    마치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를 보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이 영화는 <구별 짓기>가 출간되기 전에 만들어졌기에

    감독이 부르디외를 읽었을 리는 없는데 말이죠.

     

    그럼 이런 취미의 차이는 왜 나타나는 걸까요?

    부르디외는 사람들이 디아고게,

    즉 취미를 통해 자신을 타인과 끊임없이 구별 짓고

    자신의 '취향'을 명예, 권위를 보여줄 수 있는

    일종의 '상징자본'으로 사용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이같이 부와 지위, 성공을 과시하기 위한 취미는

    의도적으로 선택된 취향이자

    그 사람의 계급을 짐작할 수 있는 표식일 뿐입니다.

    진정한 취미로 보기는 어렵죠.

    진정한 취미는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이자

    자발적인 활동일 때 빛을 발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으신가요?

    남들에게 고상하게 비치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행복을 위해

    신바람 나게 몰입할 수 있는

    진정한 취미를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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