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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중과 공중의 차이점
    인문학(humanities) 2021. 12. 15. 22:31

    울부짖는 듯한 여학생,

    그 뒤로 환호하는 젊은이들의 모습

    대체 뭘 보고 저렇게 열광하는 걸까요?

    1969년 영국 팝 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이화여대 강당에서 내한공연을 했을 때 모습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것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죠?

    심지어 당시 클리프 리처드 팬 중에는

    그에게 열광하며 속옷을

    벗어던지던 소녀들도 있었답니다.

    팬이 아닌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죠.

    이런 열광은 스타와 팬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인에게 열광하는 사람들도 많죠.

    트럼프에 열광하는 지지자들 모습 보이시죠?

    클리프 리처드 팬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트럼프는 선거과정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적 막말을 지속적으로 늘어놓아서

    미국인들로부터 부끄럽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했습니다.

     

    이런 열광은 집단 외부에 있는 사람의 눈에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집단 내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행동일 수 있습니다.

    열광하는 집단 내부로 들어가면

    개인은 집단의 구성원이 되어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집단으로 무리를 지은 사람을

    '군중'이라 부릅니다.

    한 집안의 자식이자

    학교에서는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복학생도

    예비군 훈련에 소집되면 그 순간부터

    아무데나 침을 퇘퇘 뱉는 예비군이라는 군중으로 변합니다. 집에서는 자상한 어머니도

    백화점 반짝 세일에서

    물건을 건지기 위해 출동하는 돌격대가 되면,

    더 이상 교양 있는 어머니가 아니라

    아줌마라는 군중이 됩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던 사람도

    인터넷 카페를 방문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보면,

    어느새 사실 확인이 되지도 않은

    개똥녀와 막말남에게 저주의 댓글을 다는

    누리꾼이라는 군중으로 변합니다.

    군중은 이렇듯 서로를 동일하게 만들죠.

     

    개인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현상이

    군중을 이룰 때 나타나는 경우,

    이를 비난하기 위해 군중심리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요,

    <군중심리>라는 유명한 책을 쓴 구스타브 르봉은

    그래서 군중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군중을 구성하는 개인들 각각의 생활 방식,

    직업, 성격 혹은 지적 수준과는 상관없이

    단지 그들이 군중에 속하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집합체 공동의 영혼을 지니게 되며,

    이로 인해 그들은 개인으로 머룰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의 시대를 경험했던 르봉은

    사람들이 군중심리에 포획되어 열광하게 되면

    이성이 마비되며 질적 저하가 일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군중은 단순하고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비이성적인 말이라도 그것이 반복되면,

    군중의 의식은 전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르봉에게 군중은 존경할 이유가 전혀 없는

    저급한 집단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르봉과 동일한 시대에 살고 있던 사회학자,

    가브리엘 타르드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는 군중이 항상 질적 저하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군중이 서로 시사적인 이슈에 대한

    공동의 관심으로 연결되고

    그로 인해 여론이 형성될 때 공중으로 변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타르드는 방안에서 혼자 사색했던 사람이

    거리로 나와 또 다른 사람들과 서로의 의견을 교류할 때

    이들은 단순한 무리, 군중이 아닌 '공중'이 되어

    개인이 갖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공통된 분노의 감정을 나누는 공중은

    서로의 이성을 마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함께 이성적이 되어 스마트 몹,

    즉 영리한 군중이 된다는 것입니다.

    타르드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 의견 교환을 통해

    당시 대통령 조지프 에스트라다를 물러나게 했던

    2001년의 필리핀 공중,

    2011년 튀니지와 이집트 그리고 리비아에서

    휴대전화 트위터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도했던

    아랍의 봄을 이끈 공중들을 예견이라도 한 것 같습니다.

    타르드는 이 이성적인 영리한 군중, 즉 공중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는 무엇인가?

    그 관계는 그들의 확신이나 열정의 동시성과 함께,

    그들 각자가 지니고 있는 의식,

    즉 이런 관념이나 저런 의지를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똑같은 순간에 공유하고 있다는

    의식이다.

    그 각각의 개인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다"

     

    군중을 저질이라고 본 르봉과 달리

    타르드는 공동의 관심사로 연결된 사람들을

    충분히 현명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함께 행동할 줄 아는 공중이라고 본 것입니다.

    공중은 무엇이 부당한지를 똑똑히 알고

    그 부당함에 저항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죠.

    대한민국엔 '군중심리'에 의해

    이성이 마비된 군중이 거리에 있을까요?

    아니면 함께 하기에 영리해진

    이성적인 공중이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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