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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가 되려면
    인문학(humanities) 2021. 12. 15. 22:38

    여러분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그는 연설을 잘하기로 유명한데요, 단지 언변이 뛰어나기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바마는 자신이 혼자 말하는 연설임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들이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일방적으로 웅변하지 않기 때문이죠. 또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끊임없는 소통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박수를 받아내지요. 그는 훌륭한 오피니언 리더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오피니언 리더란 집단 내에서 타인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에 강한 영향을 주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오바마처럼 한 나라의 대통령은 물론이고 기업인, 언론인, 교수 등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오피니언 리더로 불리지요.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이들의 의견이 모두 사회나 집단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의 행동을 이끄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문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신문에나 오피니언이라는 코너가 있는데요, 이 오피니언 코너에서 이른바 전문가들이 자신의 의견을 펼칩니다. 아무나 신문에 기고를 할 수 없으니, 신문에 자신의 의견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잘 보여줍니다.

     

    전문가다운 식견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칼럼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신문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칼럼도 있습니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된 패널 토론자는 자칭 타칭 '오피니언 리더'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명문대학을 나온 박사님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 상식적인 판단에서 너무 벗어난 주장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떠드는 궤변은 시사 프로그램을 개그 프로그램으로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쏟아놓는 사람은 자신의 지위가 의견의 설득력을 높여줄 거라 믿습니다. 또한 강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수록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줄 거라 생각하죠.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최대한 근엄하게 가능한 한 확신에 찬 어조로 이야기해도 열광과 같은 기대했던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생깁니다. 마치 그 옛날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다들 열심히 듣고 있는 척 하지만 뭔가 의견이 전달되고 수용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그런 상태 말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의견은 제시되었지만 소통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버마스는 바로 이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의 책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하버마스는 "한 사람의 의견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의견 그 자체의 강력함이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의 지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다기보다는 오히려 의견이 얼마만큼 듣는 사람에 의해 수용되었는지가 중요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견도 '의사소통'되지 않으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하버마스는 의견 즉 opinion 보다 의사소통을 거친 의견 즉 '여론'이라는 뜻을 지닌 public opinion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의견은 한 명의 견해입니다. 한 명의 견해도 힘을 지닐 수 있지만, 한 명의 견해가 또 다른 견해와 '의사소통'되어 생긴 '여론'은 더 힘이 세다는 거지요. 여론은 특별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의견이 '의사소통'되어 숙성된 의견의 집합체입니다. 그래서 여론에는 한 명의 견해에선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무게감이 있습니다.

     

    여론 속에는 한 개인이 아니라 집합체의 힘이 들어 있고, 서로 다른 의견들의 충돌이 숙성을 통해 조율되는 지혜와 심지어 소수자의 의견을 경청한 후 다수결이 폭력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마저 담겨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말씀드린 오바마 대통령은 여론을 형성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고민해보자", "같이 얘기해보자"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의견으로 그치게 하지 않고, '소통'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는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인 것이죠.

     

    리더의 진정한 힘은 여론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에서 옵니다. 따라서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는 자신의 의견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여론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일 겁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이런 의미의 오피니언 리더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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