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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최초 요리책을 펴낸 전순의
    HEALTH 2021. 10. 23. 22:26

    건강의 필수 요소 요리와 음식

    ‘삼시 세 끼’라는 예능 프로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연기자 차승원 씨가 여자들도 쉽게 못하는 요리를 척척해내 화제를 모았지요. 이제는 멋쟁이 행세깨나 하려면 요리 한두 가지쯤은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요리와 음식이 하나의 교양이 된 셈이지요. 요리와 음식은 건강의 필수 요소 이기도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키는 건강의 최전선이 바로 밥상이기 때문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음식을 의약품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음식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치료에도 쓸 수 있고, 병을 예방하는 데에도 쓸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은 바로 이 음식으로 병을 다스리는 ‘식치(食治)’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세종의 큰 아드님 문종 그리고 문종뿐이 아니라 세종과 세조까지 세 임금을 모신 어의전순의입니다.

     

    어의, 전순의

    전 순의는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세종, 문종, 세조 3대에 걸쳐 활동하며 판서 자리까지 오른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어의입니다. 세종시대에 편찬된 의학 대백과사전 ‘의방유취’의 편찬 작업에도 참여했고, 식치의 비결을 담은 우리나라 의학에서 가장 오래된 식이요법 책 ‘식료찬요’를 저술한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말 그대로 당대 제일의 의사요, 당대의 식치 일인자였던 셈이지요. 전 순의가 쓴 책 중에서도 ‘식료찬요’는 앞서 ‘의방유취’를 편찬하면서 얻은 지식과, 궁중에서 비장되어 전해 내려온 의서들에서 식치 부분을 종합해 만든 ‘조선 전기 식이요법의 결정판’ 같은 책입니다. 중풍을 제거하는 방법부터 시작해 종기나 술병, 임질, 대소변 불통, 부인병, 산후병은 물론이고 발작이나 간질 같은 온갖 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병들에 대한 식이요법이 기록되어 있지요. 전 순의는 이 책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음식이 으뜸이고 약이(藥餌)가 다음이 된다. 옛사람들은 먼저 음식으로 치료하고 음식으로 치료하지 못하면 약으로 치료한다고 했으니 음식 효능이 약의 절반도 넘는다. 또 말하기를 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당연히 오곡(五穀), 오육(五肉), 오과(五果), 오채(五彩)로 다스려야지, 어찌 마른풀과 죽은 나무의 뿌리에 치료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몸에 좋은 음식을 먹자는 수준을 넘어서, 음식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한 가지 좋은 예를 소개해볼까요? 여러분, 술 많이 드시지요? 술병에 대한 조문을 잠깐 보죠. ‘주갈(酒渴, 술을 마시고 난 뒤의 갈증)을 풀어 주려면 배추 2근을 삶아 국을 만들어 마신다.’, ‘술을 먹고 난 후의 번열(煩熱,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나는 증상)을 치료하고 갈증을 그치게 하려면 굴에 생강과 식초를 넣어 날로 먹는다.’ 어떠신가요? 지금이라도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식치 요법입니다. 어젯밤 과음하시고 아직 해장을 못 하신 분들은 한번 참조해보시면 어떨까요?

    식이요법 책을 펴낸 전순의의 실수

    그런데 이렇게 탁월한  식이요법 책을 펴낸 전순의는  문종대왕의 치료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이것은 음식이 약처럼 잘못 쓰면 몸을 망칠 수 있다는 좋은 보기가 되지요. 문종은 재위 2년 만에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일찍 죽어, 병약하고 별 볼 일 없는 왕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아들 단종을 범 같은 삼촌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한 것도 그에 대한 평가를 떨어뜨리는 감점 요인이지요. 하지만 문종은 세종 재위 후반기에, 건강이 악화된 아버지 세종을 대신해 세자로서 섭정을 맡아 국정을 돌봤습니다. 세종이 죽기 전까지 8년 넘게 실질적인 왕 노릇을 했지요. 사실 세종 말년에 이루어진 한글 창제나 측우기 발명 같은 과학문화 사업, 그리고 육진 개척 등 영토 확장을 비롯한 군사적 업적 모두가 세종의 국정 파트너 문종의 지휘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문종은 세종처럼 뛰어난 유학자였고, 과학자였습니다. 그리고 영민한 통치자이기도 했지요. 게다가 효자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가정사는 불행했습니다. 문종의 부인이, 그것도 정실이 3명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문종은 부인들과 두 번은 생이별하고, 한 번은 사별해 세 번이나 홀아비가 되어야 했습니다. 첫 번째 부인은 궁중에서 주술을 쓰다가 쫓겨났고, 두 번째 부인은 궁녀와 레즈비언 스캔들을 일으켜 쫓겨났죠. 세 번째 부인은 아들 단종을 낳자마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홀아비 문종이 느꼈을 심적 고통과 답답함이 상상이 가시나요? 아마 도덕군자였던 문종은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삭였을 겁니다만, 그 마음속 불은 결국 병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종은 거듭해서 나는 종기로 평생을 고생했습니다. 세자 때부터 등과 허리 밑에 나는, 클 때는 한 자 가량 되는 여러 개의 종기로 죽을 위험에까지 처하지요. 문종 2년 5월 죽기 직전에는 종기에서 360cc 정도의 고름을 짜냅니다. 그런데 이런 위급상황에서 전 순의는 꿩고기 구이를 문종의 수라에 올립니다. 한의학에서는 꿩고기를 ‘이화(離火)’의 음식이라고 합니다. 꿩을 ‘야계(野鷄)’라고도 하는데, 쪄서 요리하면 닭은 색깔이 하얗게 변하지만 꿩은 색깔이 붉게 됩니다. 그래서 오행으로 보았을 때 꿩은 ‘화(火)’의 음식이라고 규정하는 거지요. 그래서 특히 불의 기운이 강한 날에는 아예 먹지 못하도록 한 음식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종기’가 생기는 원리는 무엇일까요? 종기는 본래 혈에 열이 심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불이 작용해 생긴 질병이지요. 그러니 ‘화(火)’의 음식인 꿩고기는 문종의 종기를 악화시킬 수도 있는 음식이었지요. ‘식치의 일인자’ 치고는 너무나 큰 실수였습니다. 당연히 전 순의는 대소 신료들의 탄핵을 받았고, 문종 사후 청지기로 전락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효종 때의 신가귀처럼 처형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세조가 전순의를 시켜 음식으로 문종을 암살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지요.

    음식의 궁합

    질병과 음식, 음식과 다른 음식 사이에는 절대 함께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가 하면, 꼭 함께 써야 약효를 볼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효험을 봤다고 해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건강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알고 이해하여 실천하는 것입니다. 온갖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풍요의 시대인 지금이야말로 식치의 지혜를 살펴야 할 때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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