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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흥 여행, 외딴 섬 쑥섬마을
    여행지 이야기 2021. 10. 19. 09:21

    전라남도 고흥, 나로도항에서 배를 타고 3분 남짓 가면 외딴섬에  도착합니다. 거센 바람을 이겨낸 쑥이 많이 자란다고 해서 쑥섬으로 불리는 애도(艾島)인데요. 해안선 길이가 고작 3.2km인 작은 섬이지만,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섬에 도착하자 마을을 지키는 한 부부가 눈에 띕니다. 쑥섬을 자식 키우듯 가꾸고 있는 중학교 교사 김상현, 시골 약사 고채훈 부부인데요. 두 사람이 16년 전부터 일군 ‘해상 꽃 정원’이 쑥섬을 더욱 향기롭게 만들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업’이 오랜 꿈이었던 부부는 쑥섬을 알리고, 섬마을에도 활기를 불어넣고 싶은 마음에 사비를 털어 맨손으로 정원을 일궜습니다. 처음에는 꽃 하나 그거 심어서 되겠냐며 섬마을 사람들도 회의적이었지만, 결국 한 송이 꽃이 점점 모이니 꽃밭이 됐고, 정원이 됐고, 울창한 숲이 됐습니다. 부부의 정성에 결국 섬마을 사람들 도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했는데요. 수평선을 배경 삼아 핀 야생화에 부부의 땀방울이 맺혀 있습니다. 노랑, 빨강, 주황, 보라, 300여종의 꽃이 피고 지며 찾는 이에게 행복을 전합니다.

     

    부부는 섬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길마다 이름을 지어주고 이야기를 더했는데요. 섬마을 돌담길은 젊은 연인들이 어르신의 눈을 피해 손을 맞잡았기에 '사랑의 골목'으로 통합니다. 연인이 손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친구와 손잡으면 우정이 깊어진다고 하지요. 숭숭 뚫린 돌담은 삼베옷을 걸친 것처럼 시원한데요. 수백년 세월을 입은 굽은 길, 돌담길이 참 정겹습니다.

     

    버섯모양의 쉼터 옆으로 탐방로가 놓여 있는데요. 70 여 미터는 숨 가쁘게 올라간다고 해서 ‘헐떡 길’이고요. 나머지는 수월한 평지길입니다. 400년 만에 개방된 이곳은 섬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하던 당숲인데요. 부부의 정성에 섬마을 사람들이 외부인 출입을 금하던 숲을 개방했습니다. 원시난대림이 빼곡해 하늘 한 점 보이지 않는데요. 세월의 무게에 못 이겨 90도로 허리를 숙인 나무도 인상적이고요. 껍질에 육각형 얼룩이 생겼다고 하는 육박나무는 식물원에도 보기 힘든 귀한 나무로 200살은 족히 되었습니다. 쑥섬의 마스코트이기도 하지요. 오래된 후박나무가 태풍을 맞아 몸을 누이고 쉬고 있습니다. 자식을 업고 기르느라 등이 굽었다고 해서 섬사람들은 ‘어머니 나무’라고 부르는데요.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자연이 치유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 섬사람들답습니다.

     

    탐스럽게 열린 이것은 야생 무화과인 천선과 인데요. 반쪽을 먹으면 2년이 젊어진다고 하니 그야말로 천상의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부부와 섬마을 사람들이 외지인을 배려해, 나무마다 표찰을 만들고 스토리까지 넣은 것을 보니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듭니다. 섬을 아끼던 섬마을 사람들은 쑥섬을 자연 그대로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섬 안에 무덤을 쓰지 못하게 했는데요. 그 덕분에 이 작은 쑥섬 어디를 가도 봉분을 볼 수가 없고, 곳곳마다 숲이 울창합니다.

     

    원시 난대림에서 벗어나 걷다 보니 탁 트인 하늘이 열립니다. 나로도 내해는 호수같이 잔잔한데요. 바로 이 섬이 수문장처럼 거친 바람을 막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애도의 서쪽은 해식 해가 발달되어 마치 영화 ‘빠삐용’의 절벽을 연상케 합니다. 부부의 오랜 정성이 섬마을 사람들을 움직였고, 그 덕분에 겹겹이 곱게 쌓인 쑥섬의 세월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쑥섬은 전라남도 민간 정원 1호로 지정되었는데요. 지금처럼 변함없는 자연 풍광을 만날 수 있게 찾는 이들이 소중한 마음으로 쑥섬을 돌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쑥섬에서 만난 부부의 웃음, 섬마을 사람들의 인심이 가슴에 베여서, 제 마음이 두고두고 행복했듯, 여러분에게도 기쁨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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