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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신약 후보 물질, 밤나무 잎카테고리 없음 2022. 1. 10. 21:42
언제부턴가 해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며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2016년 초에는 지카 바이러스가, 2015년에는 메르스가, 2014년에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2019년에는 코로나가 지구촌을 긴장시켰습니다. 그런데요, 이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항생제 내성균 , 즉 수퍼벅입니다. 이 균에 감염되면 웬만한 항생제를 써도 잘 듣지 않아서 목숨이 위험해집니다. 실제로 2015년 미국 UCLA 대학병원에서 담도내시경 검사를 한 179명의 환자 중 7명이 수퍼벅에 감염되었는데, 그중 2명이 사망해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위험한 내성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는 겁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수퍼벅에 대항할 만한 신규 항생제를 찾아다녔습니다. 문제는 기존의 연구방법으로는 찾을만한 것은 거의 다 찾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항생제는 흙 속 균에서 발견하거나 합성해서 만듭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금방 내성균이 생깁니다. 때문에 병원균을 단순히 죽이는 항생제가 아닌 내성균이 생기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항생제가 필요 해졌습니다.
생명공학계는 새로운 항생제를 찾아냈을까요? 2015년 미국 에모리 대학 연구팀은 지중해의 밤나무에서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내성균을 방어할 수 있는 항생제를 발견했습니다. 항생제를 써도 듣지 않는 내성균인 메티실린 저항성 포도상구균을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 물질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물질은 병원균을 직접 공격해 죽이는 것이 아니고 병원균끼리의 소통을 막습니다. 병원균들이 서로 소통을 하냐고요? 병원균들은 인체에 침입 후 무조건 공격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소규모로 공격해봐야 인체의 면역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금방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학신호를 적극적으로 주고받으며 주변에 동료들이 얼마나 모여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이것을 정족수 인식이라고 하는데요, 병원균들이 의사소통을 통해 개체수가 일정 정도 이상이 된 것을 확인하면 이때 인체를 공격하는 독소를 동시에 만들어내며 집단행동에 돌입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항생제는 바로 이러한 병원균의 소통을 막아서 병원균이 단체로 인체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연구팀은 어떻게 신개념 항생제를 발견했을까요? 이 연구를 주도한 에모리대 의학부 카산드라 쿼브 교수는 오랫동안 토종식물의 상호작용을 연구해왔는데요. 이탈리아 남부나 지중해 농촌 사람들이 피부 감염과 염증 치료에 밤나무 잎을 활용하는 것에서 착안해 유럽의 밤나무 성분을 연구하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오와대 미생물학자인 알렉산더 호스 윌 교수와 협력해 밤나무 잎에서 다양한 화학물질을 추출했지요. 그렇게 94종류의 화학물질을 분리해 냈는데요, 이 중 포도상구균의 정족수 인식을 방해하는데 뛰어난 활성을 보이는 추출물을 찾아냈습니다.
연구팀은 쥐의 피부에 포도상구균 내성균인 MRSA를 감염시킨 후 병원균이 어떻게 신호를 전달하는지 그 경로를 먼저 확인했습니다. 이후 이 밤나무 추출물을 50 마이크로그램 투여했는데요, 그러자 MRSA의 독소 생산이 중단돼 쥐의 조직과 적혈구가 더 이상 손상되지 않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연구팀은 2주 동안 실험을 계속해봤는데요, 혹시 밤나무 추출물에 대한 또 다른 내성균이 발생하지 않을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2주 동안 내성균의 저항성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사람의 피부 세포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밤나무 추출물은 피부 손상을 막았고 정상적인 피부 미생물군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병원균 사이의 소통을 방해하는 새로운 항생제는 병원균을 사멸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생제의 공격에서 살아나 더욱 강력해지는 변종 내성균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몸에 존재하는 이로운 세균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이로운 균의 수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연구진은 이 밤나무 잎 추출물에 대해 특허를 출원했는데요, 추출물을 활용한 치료제가 허가를 받을 경우 MRSA 가 증식하기 쉬운 대학병원 등 다양한 곳에서 내성균 치료에 이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항생제의 출현으로 슈퍼 내성균과 항생제 간 생존싸움은 이제 3라운드에 접어들었습니다. 1라운드는 페니실린 발견으로 인간이 승리를 거뒀다면 2라운드는 내성균의 출현으로 병원균의 반격이 이어진 것입니다. 이제 3 라운드에 접어든 생명공학계는 또 어떤 새로운 방법을 통해 내성균에 대항하는 항생제를 만들어낼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