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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
    인문학(humanities) 2021. 12. 15. 23:45

    오늘날 신문이나 TV 뉴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식 중의 하나가

    자살 소식입니다.

    가정형편을 비관해

    온 가족이 번개탄을 피워놓고 삶을 마감했다든가,

    강제출국 위기에 몰린 이주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를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형편이 어려운 사람만

    자살하는 게 아닙니다.

    얼핏 보면 전혀 남부러울 것 없는

    지위와 돈을 갖고 있는 사람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있지요.

    개개의 자살에는 모두 저마다의 사연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살을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로만

    볼 수 있을까요?

    자살률 추이를 살펴보면

    개인의 비극을 개인적인 것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못한 구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1987년 한국의 자살률은 9.7명이었습니다.

    1987년부터 1997년까지 자살률은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극적인 변동 없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다

    조금 상승했는데요,

    눈에 띄는 지점은 1997년에서 1998년입니다.

    1997년 15.6명이었던 자살률은

    1998년 21.7명까지 치솟았습니다.

    1997년과 1998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을 살펴보겠습니다.

    뒤르켐은 개개의 자살이 아니라

    자살 사건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자살률'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만약 심약한 기질이나 염세적인 삶의 태도와 같은

    개인의 성향만이 자살의 원인이라면,

    자살률은 기복 없이 평균율의 법칙을 따를 겁니다.

    하지만 자살률은

    경제성장률이나 다른 사회지표처럼 변동하죠.

    뒤르켐은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왜 자살률은 사회에 따라 다른지,

    그리고 한 사회 안에서도 자살률은

    왜 변동하는지를 풀기 위해

    통계자료를 분석하며

    지금까지 연구되지 않았던 자살을

    사회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각각의 자살에서 관계를 파악하고,

    다시 관계에서 '특정한 경향'을 해석해 내고,

    그 특정한 경향을 '개인 외부'에 있는

    '사회적 힘'과 연결시킨 것입니다.

    뒤르켐은 "현상의 생성 원인은

    개별적인 사례만 관찰하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원인은 개인의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개별적 사건보다 더 높은 관점에서 보아야 하며,

    무엇이 개별적인 사례들에 단일성을 부여하는지

    파악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뒤르켐은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으로 개인을 몰고 가는 '개인 외부의 힘'을

    '사회적 사실'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살률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살은 개인의 심리적 동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더 강한 힘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속해 있는 사회적 힘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뒤르켐의 시선을 통해

    앞에서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1998년에 한국에서 갑자기 자살률이 높아졌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라는

    경제위기에 직면했었습니다.

    IMF 구제금융사태 이후 고용은 불안정해졌고

    가족의 해체 경향도 커졌고

    공동체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이 요인들이 결국

    자살률을 높이는 사회적 배경으로 작용했던 겁니다.

     

    그런데, 경제위기 때문에 자살률이 높아졌다면

    IMF 사태를 극복한 이후에는

    자살률이 낮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왜 1998년 이후에도

    한국의 자살률은 계속 상승하는 걸까요?

    경제 성적표가 좋으면

    모든 것이 다시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자살률이 배반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요?

     

    MF 외환위기를 겪으며

    한국 사회에는 '부자 되기' 열풍이 불었습니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자 되기 욕망이 강해질수록

    달성하지 못했을 때 좌절의 강도 또한 커집니다.

    커진 욕망과 좌절된 욕망 사이에서

    사회적 혼돈 즉, 아노미가 자라지요.

    이런 상황은

    단순히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고 해소되지 않습니다.

    즉 높은 경제성장률이

    빈곤을 상대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노미적 상황에서 자란 박탈감은

    성장률로 다스릴 수 없는 겁니다.

     

    경제성장률 상승이 삶의 만족감과 만나지 못하면

    행복이 아니라 아노미의 조건이 됩니다.

    행복에 대한 요구가 사치스러운 기대로 취급받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자살률은 낮아지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2006년 경제성장률은 5.2%에 도달했지만

    한국의 자살률은 26.2명으로

    OECD 국가 평균 자살률 11.7명을 훌쩍 뛰어넘어

    1위를 차지했죠.

     

    알코올 중독의 원인은

    술을 끊지 못하는 개인의 의지박약이 문제가 아니라

    '술 권하는 사회'에 있을지 모릅니다.

    자살의 원인 역시

    삶에 대한 의지가 약하거나

    불행한 팔자를 타고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 몬

    '사회적 불행'에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자살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 사회 배경 요인들을 개선해야 합니다.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고,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적 사실이 개선될 때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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