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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여행을 할 것인가
    인문학(humanities) 2021. 12. 15. 23:21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늘면서

    각종 모임에서도 빠지지 않는 화제 중 하나는

    단연 '여행'입니다.

    특히 휴가가 끝난 직후라면

    유명 관광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은근히 다녀온 곳을 자랑하는 사람도 많지요.

    자랑 섞인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매력적인 여행지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어떤 여행을 할 것인가'에 대해

    포스팅해볼까 합니다.

     

    영국 사회학자 중에 '모빌리티' 즉, 이동의 관점에서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분석한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존 거리입니다.

    그는 여행도 이런 '이동'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했는데요,

    존 어리의 저서 <관광객의 시선>에는

    '관광을 위해 이동'하는 사람들에 관한 시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휴가지로 파리를 선택했다고 합시다.

    왜 하필 파리였을까요?

    그 사람이 이전에 파리에 갔던 경험이 없다면

    여행지로 파리를 선택한 배경에는 '외부적 요인'이 있었을 겁니다.

    '낭만의 도시 파리' 이런 '이미지' 말이죠.

    이런 이미지는

    여행객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외부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게 바로 '관광객의 시선'입니다. 어린, 관광객은 자신이 탐색한 관광정보에

    자신의 시선을 고정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관광지에 가서 그 정보를 확인하는데

    온통 시간을 쏟지요.

    어린 이런 여행을 가리켜

    '관광지에 대해 이미 머릿속에 그려 놓은 이미지,

    관념을 확인하기 위한 이동'이라고 지적합니다.

     

    '관광객의 시선'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기 전에 여행안내 책을 사는데요,

    안내 책에 나온 여행지의 볼거리를 확인하고

    맛 집에 동그라미를 칩니다.

    그리고 여행지에 도착하면 책에 소개된 장소에 들르고,

    책에 소개된 음식을 먹습니다.

    이렇게 관광객의 시선으로 사물을 보는 사람은

    파리로 여행을 가서도

    자신이 이미 습득한

    '낭만의 도시 파리'라는 이미지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관광객 유치에 몰두하는 도시들은

    자신들만의 도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총력을 다합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관광 이미지가

    '관광객의 시선'을 이끌어내면

    그 관광지로 '관광객의 시선'을 탑재하고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관광객으로 붐비는 도시에는

    대부분 현지인들이 많지 않습니다.

    '관광객의 시선'을 지닌 외국인들만 가득하죠.

    한국인보다는 외국 관광객이 더 많은 서울 명동처럼요.

     

    관광객의 시선에 사로잡힌 관광객은 장소에 집착합니다.

    유명한 곳을 둘러봤다는 것,

    그 유명한 장소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여행에서 우리는

    항공사 마일리지는 적립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여행을 통한 내면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이면을 보려 하거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자기 성찰적' 여행,

    나를 성장시키는 '내면'을 위한 여행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여행이 이런 '관광객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걸까요?

    관광객의 시선에서 벗어난 두 사람의 여행이

    우리에게 힌트를 주지 않을까 싶은데요,

    바로 신라의 승려 혜초와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여행입니다.

     

    혜초는 스무 살이 되던 해인 723년,

    당나라에서부터 출발해 천축, 즉 인도를 거쳐

    서쪽의 페르시아까지 갔다가

    중앙아시아를 통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장안으로 돌아오는,

    장장 4년에 걸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여정의 기록이 <왕오천축국전>에 남겨져 있는데요,

    "보리수가 멀다고 걱정 않는데,

    어찌 녹야원이 그리 멀다 하리오.

    가파른 길 험하다고만 근심할 뿐

    업연의 바람 몰아쳐도 개의찮네"

    이런 글이 남겨져 있다고 합니다.

    <왕오천 국'깨달음'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지닌

    '구도의 시선'이 느껴지지요. 아마 여행을 떠나기 이전의 혜초와

    여행을 마친 후의 혜초는 달랐을 것입니다.

     

    괴테는 1786년 9월부터 1788년 4월까지

    1년 9개월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을 했습니다.

    괴테는 뛰어난 문학가였지만

    동시에 <색채론>을 남기기도 했던 자연과학자였는데요,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는 산의 고도에 따라

    식물의 식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했고,

    도시를 지날 때는 인문을 관찰하고

    통찰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제법 두꺼운 책으로 고스란히 남겼죠.

    로마에서 남긴 일기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오래도록 느껴보지 못했던,

    명랑하고 편안한 기분으로

    여기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나의 노력,

    나의 눈빛을 흐리지 않게 하려는 나의 중심,

    주제넘은 모든 생각을 완전히 떨쳐버리려는 나의 태도,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울려

    내게 도움이 되고

    나로 하여금 남모르는 은밀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모든 사람들이 '관광객의 시선'으로 무장하고

    여행을 떠나지는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혜초처럼, 괴테처럼

    울림 가득한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다음 휴가 때 어디를 가보실 생각입니까?

    아니 어떤 여행을 할 생각이신지요?

    관광객의 시선이 아닌

    온전히 '나의 시선'으로 여행길을 열어가는

    그런 여행을 떠나보시면 어떨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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