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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적 보상이 아닌 자기존엄 회복
    인문학(humanities) 2021. 12. 15. 21:42

    사람은 모여 삽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말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인간 문명의 놀라운 성과도

    모여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재주, 재능이

    다른 사람과 연결되면서

    각자의 대단하지 않은 재능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으니까요.

    문명은 이래서 발생했을 것입니다.

    설사 로빈스 크로스가 천재였다 하더라도

    홀로 난파당한 그 섬에서

    로빈스 크로스는 문명을 일궈내지 못했겠지요.

    장애를 갖고 태어난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역시

    혼자였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재 스티븐 호킹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함께 산다는 건 이렇게 좋은 일이지만

    함께 해서 벌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의 대부분은

    사랑과 평화보다는 분쟁과 갈등에 관한 소식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이익 배분의 문제,

    즉 돈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갈등이 다 돈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적지 않은 갈등은

    돈이 아니라 자기 존엄이 훼손됐다고 느낄 때,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 발생합니다.

    세상 물정의 사회학의 두 번째 화두는 바로 이 문제,

    자기존엄과 인정입니다.

     

    사람에겐 스스로 존귀한 존재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자기존엄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빛나는 존재로 인정할 때

    우리는 깊은 만족감을 느끼죠.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면 어떠한가요?

    인정받지 못했을 때, 무시당했을 때는

    모욕감을 느낍니다.

    모욕은 매우 견디기 힘듭니다.

    자기존엄이 훼손되었기 때문이죠.

    인간은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인격에 가해진 무시에도,

    그로 인한 정신적 모멸감에도 반응하는 존재입니다.

    때문에 응당 누려야 될 권리가

    특정 집단에게 보장되지 않을 때,

    종교가 다르다고, 인종이 다르다고,

    성취하고 싶은 꿈이 다르다고,

    성적 정체성이 다르다고,

    한 개인의 생활방식과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거나 놀림의 대상으로 만든다면,

    그 사람의 명예와 품위는 무차별적으로 훼손되고

    깊은 모욕감을 느끼게 됩니다.

    모욕은 자기존엄을 추구하는 개인에 대한

    일종의 '관념적 살인'입니다.

     

    모욕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자기존엄이 훼손되었다고 느낄 때

    사람은 자기 명예 회복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려 합니다.

    3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대표하는 독일의 철학자

    액셀 호네트는 이를 가리켜

    '인정투쟁'이라 명명했습니다.

    호네트는 그의 저서 <인정투쟁>에서

    상처 입은 사람이

    자기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행하는 어떤 행동을

    바로 인정투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회적 갈등의 숨겨진 요인이 인정받지 못함,

    무시와 모욕 때문 이른 거지요.

    호네트는 무시당하고 모욕당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을

    인정투쟁이라 정의했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호네트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투쟁에 동기를 부여하는 이차적 이유는

    무시 경험의 구조 자체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사회적 수치감 속에서 알게 되는 것은

    굴욕과 모욕을 수동적으로 참아낼 때

    전형적으로 갖게 되는 자기 존중심의 약화에 대한

    도덕적 감정이다"

     

    인정투쟁의 사례를 우리 생활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전업주부가 한 명 있습니다.

    일을 보기 위해 시내에 차를 가지고 나왔는데

    그만 주차된 차를 살짝 긁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뒤에서 이런 목소리가 날아옵니다.

    "여자가 집에서 밥이나 할 것이지,

    왜 기어 나와서 운전이야!"

    '솥뚜껑 운전자'네 어쩌네 하며

    누군가 이 분을 폄하합니다.

    이 여성은 어떻게 느낄까요?

    분명 모욕당했다고 느낄 겁니다.

    자신이 비록 주차된 차를 긁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격모독까지 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욕적인 말을 한 사람에게

    사과를 요구합니다.

    이 여성에게 사과는 매우 중요합니다.

    사과의 형식을 통해야만

    훼손된 자기존엄에 난 상처가 치유되기 때문이죠.

    사과를 요구하는 여성의 행동이 바로

    호네트가 말한 인정투쟁의 한 사례입니다.

     

    자기존엄이 훼손되었다고 느꼈기에 사과를 요구하는,

    인정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사과는커녕 "얼마면 되겠어?"라는 말을 한다면 어떨까요?

    그건 상처 받은 사람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인정을 요구하는 사람은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자기 존엄 회복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지요.

    성숙한 개인은 사과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설사 자신이 실수로

    타인의 존엄성에 상처를 주는 행동이나 말을 했더라도,

    상처 입은 사람이 사과를 요구할 경우

    기꺼이 그 사과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중한 사과를 통해

    훼손당한 그 사람의 자기 존엄 회복을 돕는 사람.

    그게 바로 성숙한 사람일 것입니다.

    부당하게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명예 회복을 요청할 때,

    그 요청의 의미를 깨닫고 경청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성숙한 사회일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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