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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메트로폴리스 서울 이야기여행지 이야기 2021. 10. 19. 10:04
조선말 20만 명이 살았고, 해방 전후 100만 명의 인구를 헤아리다가, 1990년 1000만 명을 돌파해 현재는 대한민국 인구의 5분의 1이 살고 있는 도시는 어디일까요? 동방의 메트로폴리스, 바로 서울 입니다. 서울은 6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면적 30배, 인구 100배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구 상에서 가장 압축적으로 팽창한 도시 입니다. 그런 서울에 대해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서울이라는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서울의 역사와 문화, 지리에 관해 잘 아시는 분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오죽하면 소설가 김훈은 서울을 ‘만인의 타향’이라고 했겠습니까. 하지만 ‘서울’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 땅의 역사를 대변하는 의미 있는 땅입니다.
먼저 우리가 평소 입에 달고 사는 ‘서울’이라는 지명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이 지명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사실 ‘서울’은 지역명이라기보다 수도로 사용된 역사가 훨씬 더 깁니다.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지만, 외국인들은 신기하게 느끼는 지명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지명이 한자로 되어있는데 , 유독 서울만 순우리말이기 때문이죠. 서울의 유래는 서라벌에서 음운이 변화되어 탄생했다는 것이 정설인데요, 삼국유사에 전하는 향가 처용가의 첫 구절을 살펴보면 좀 더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새벌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에서 새벌은 신라의 도읍이자 나라 이름이던 서라벌을 가리키고, 이것이 지명으로 정착된 것이죠. 고구려의 졸본(환인), 백제의 소부리(부여), 고려의 송악(개성) 같은 삼국시대 이후 수도의 명칭이 모두 서라벌에서 나왔다고 하니, 서울은 수도를 나타내는 보통명사이기도 하고 서울이라는 지역을 이르는 고유명사이기도 한 셈 입니다.
1896 년 4 월 7 일 ,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 창간호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서울 ’이라는 지명이 표기 가 됐습니다. 독립신문 한글판에는 제호 아래에 ‘조선 서울’이라고 표기했고, 영문판에는 ‘SEOUL KOREA’라고 발행지를 밝혔는데요. 그래서였을까요. 그 당시 외국 선교사나 공관원들은 “조선의 수도를 무엇이라고 부르는가?”라고 질문할 때마다 한결같이 ‘SEOUL’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해방을 맞고, 1년이 지난 후에도 서울의 공식 지명은 서울이 아니었습니다. 경기도 경성부였죠. 그런데 1946년 9월 18일, 미 군정청이 ‘서울은 경기도 관할에서 독립한다.’라고 발표를 합니다. 이제 ‘서울독립시’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긴 것이죠. 하지만 실제로 서울독립 시라는 말을 들어본 분은 없으실 겁니다. 여기에는 후일담이 있는데요. 당시 법령 번역을 맡은 군정청의 한국인 직원이 ‘서울독립 시’는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고민 끝에 ‘서울특별시’라고 번역을 했고, 오늘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서울특별시가 되기까지 웃지 못할 사건이 또 있었는데요. 이승만 대통령 집권 후 “우리나라 지명 중 유일하게 한자로 표시가 안 되는 서울이라는 지명은 문제가 있다”면서 지명 변경 검토를 지시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아호, 즉 우남을 도시명으로 정하고 싶은 의도를 은연중에 드러냈다고 하는데요. 실제 정부가 추진한 수도 명칭 현상모집에서 우남 시가 1 등을 차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거센 반대가 있었던 것은 물론 비용 문제,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엔 민망해 차일피일 미루다 4·19를 만나 없었던 일이 됐습니다.
이번에는 서울이라는 지명과 연관된 몇 개의 숫자를 통해서 서울의 역사와 위상을 짚어보겠습니다. ‘2000’이라는 숫자 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서울의 역사입니다. 흔히 서울 하면 600년 역사의 도시로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의 건국설화를 보면 서울의 기원은 기원전 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기에 한성백제 493년, 고려가 서울을 남경으로 삼은 기간까지 더하면 서울의 역사는 무려 2000년이 되는 것이죠.
다음은 ‘4’입니다 . 이 숫자는 서울의 공간적 영역과 관계 깊은데요. 조선시대의 서울의 모습을 살펴볼까요? 한양 도성은 크게 백악, 인왕산, 남산, 낙산 등 4개의 내사산과 그 둘레를 둘러싼 북한산, 덕양산, 관악산, 용마산 등 4개의 외사산으로 경계 지어집니다. 한양 도성은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성곽의 안쪽을 말하는데요. 4개의 큰 문과 4개의 작은 문으로 도성 출입을 통제했습니다. 이 문이 바로 사대문이지요. 사대문은 내사산을 1차 경계선, 한강과 외사산을 2차 경계선으로 해서 지방과 구별됐는데요. 서울은 하천과 고개의 도시였습니다. 사대문 안 풍광은 8개의 산에서 흘러내린 청계천, 모래내, 중랑천 등 34개의 하천으로 말미암아 생긴 230개의 크고 작은 고개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그 위에 지어진 자연친화적 한옥과 초가집이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이뤘지요.
마지막으로 20 만 이라는 숫자입니다 . 18세기 서울의 인구인데요. 당시 프랑스 파리가 10만 명, 영국 런던의 인구가 15만 명이었으니까,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 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3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서울의 위상은 어떨까요? 포브스지 조사에 따르면 세계 영향력 있는 도시 순위에서 서울은 런던, 뉴욕, 파리, 싱가포르, 도쿄 등지에 이어 16위에 랭크됐는데요. 인구뿐만 아니라, 경제, 환경, 교통 등 다양한 평가요소를 종합한 결과라고 하니, 앞으로 서울의 위상이 더 높아질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우리에게 서울은 과연 무엇일까요? 서울은 역사적으로 기원전의 역사를 품은 고대 도시이고, 공간적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자웅을 겨루던 한반도 최대의 쟁패 지였습니다. 조선 500년 내내 한반도 내의 유일무이한 대도시이자 국가 그 자체였던 곳이죠. 예나 지금이나 서울은 한반도의 모든 물자와 사람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입니다. 역사적, 지리적 층위가 겹겹이 쌓인 공간이죠. 어쩌면 오늘날 서울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이미 오랜 옛날부터 예고된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을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지리를 알면 서울이 걸어온 발자취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