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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직업을 갖게 된 이유카테고리 없음 2021. 11. 29. 02:11
직업의 의미
우리는 대부분 '직업'을 가지고 삽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직업은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요. 어떤 경우에는
직업이 그 자체로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을 만나면 상대에 대해 가장 먼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직업이고, 매체에서 사람을 다룰 때도
이름 옆에 나이와 직업이 함께 소개되죠.
호칭의 인플레이션
요즘은 호칭의 인플레이션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호칭으로만 보면 우리나라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사장님 아니면 선생님일 겁니다.
영어권의 'Mr'나 'Miss', 일본어의 무슨무슨 '상'처럼
직업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는 호칭이
없기 때문인데요. 되도록 상대방을 높여주려는
존중과 배려의 마음에서 출발했겠지만,
부작용도 없지 않습니다.
오늘 이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직업에 아주 민감하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대접받을 수 있는 직업에 집착하는 것도
이런 풍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호칭에서 그 사람의 지위가 드러나 버리는 거죠.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잠자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일하는 시간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학교를 졸업하면,
노년에 접어들기 전까지 우리는 직장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직업이 중요한 이유인데요.
아무리 수입이 높고 사회적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고 해도,
가진 직업이 타고난 적성과 맞지 않는다면
행복의 반은 잃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퇴계가 끊임없이 사직상소를 올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입니다.
직업 선택의 자유
퇴계가 살던 시절에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양반이든 평민이든 대부분 가업을 물려받아서
평생 그렇게 살아갑니다.
직업 선택에 있어서 유동성이 높았던 건 오히려
서민 쪽이었지요. 농부가 대부분이었지만
적어도 상인이나 수공업자가 될 여지도 없지는 않았고,
서비스업에 종사할 수도 있었을 테죠.
하지만 양반계층은 두 가지 길밖에 없었습니다.
과거에 합격해 관료가 되거나 아니면 백수로 사는 것이죠.
양반계층이기 때문에 백수로 살아도 무방할 것 같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렇게 간단히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낮은 자리라도 벼슬을 얻지 못하면
같은 양반계층에서는 물론, 평민들에게도
무시당하기 일쑤였죠.
퇴계 또한 이러한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스물네 살 때 과거에 낙방하고
고향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인데요.
하루는 고향집에 있는데 누군가 문밖에서
"이 서방!”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퇴계는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대답하려고 봤더니,
어떤 사람이 늙은 종을 찾아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아직 변변한 직함이 없었기 때문에 하인과 같은 호칭으로
불리고 있었던 거죠. 당시 퇴계는 "내가 아직
이루어놓은 것이 없어 이러한 욕을 당하는구나!"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거기에 얽매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퇴계의 직업
퇴계의 직업을 오늘날의 방식으로 정의하기는 힘듭니다.
관료로 많은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퇴계는 그 자리에 있고 싶지도 않았고,
그 직함으로 불리기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학자이자 선생님으로 평생을 자처했지만,
그 직업으로서 수입은 전혀 없었죠.
주된 수입원은 농업이니 '농업 경영인'이라고
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직업과 수입원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거죠.
이러한 퇴계의 삶으로 보았을 때
직업은 두 가지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첫째는 '생계를 위해서'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직업관과도 일치하니, 길게 말씀드릴 필요가
없겠습니다. 다만 직업을 생계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경우,
지켜야 할 원칙이 있었습니다.
'지위가 낮고 책임이 가벼운 직책에 머물러야 하며,
지위가 높고 책임이 중한 자리에까지
올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퇴계의 관직생활의 주된 이유도 이것이었기 때문에,
퇴계는 높은 관직이 주어질수록 더욱 굳게 사양합니다.
"낮은 벼슬이라면 나아갈 수도 있지만
높은 직책은 맡을 수 없다."
둘째는 사회적 책임입니다. 크든 작든
사람은 사회에서 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일을 하는 것은 그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죠.
유학은 수기치인, 나를 닦아 세상에 기여하는 것을
모토로 삼은 사상입니다. 여기서 '치인'이란,
남을 다스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의 평화와 조화에 기여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길은 각자
합당한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죠.
모든 직업은 치인의 실현에 해당합니다.
퇴계의 사상으로 보면, 농사꾼, 상인, 장인은 물론
천민에 속했던 대장장이나 백정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책임과 의무가 있고,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곧
치인에 참여하는 훌륭한 일이었던 겁니다.
퇴계의 직업관
퇴계의 사상으로 보면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돈을 번다는 건
직업을 가지는 부분적인 목적일 뿐입니다.
타인의 대접이나 존경을 받기 위한 것은 더더욱
직업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퇴계의 사상은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별성을 긍정합니다.
그러니 누구든 자신의 특화된 소질과 적성이 있죠.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그 소질과 적성을 펼치면서
자신의 삶을 즐기고, 그럼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려는 것이
우리가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는 목적일 겁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직업'과 이 직업을 갖게 된 이유,
그리고 이 직업이 나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한번 곱씹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