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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EP, CPTPP 란?경제 이야기 2021. 10. 20. 00:54
RCEP, CPTPP를 들어보셨나요? 최근 글로벌 경제의 주요 화두 중 하나인데요. CPTPP와 RCEP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은 중국 때문입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배제한 다자간 FTA가 CPTPP라면, 이에 대항하여 중국이 주도하는 것이 RCEP이지요. 트럼프의 TPP 탈퇴 선언과 보호무역주의 행태를 기회로 삼아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나선 중국! 중국의 의중처럼 다자간 FTA가 잘 되고 있을까요?
중국은 트럼프의 TPP 탈퇴 선언을 계기로 아시아 국가들 간의 다자간 FTA로 진행되고 있던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 RCEP에 적극 뛰어들었는데요. 총 16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RCEP는 참가국 인구가 무려 35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48.4%를 차지합니다. 세계 GDP와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38.3%와 27.8%에 달할 정도로 TPP에 못지않은 거대 규모죠.
중국이 RCEP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중국의 외교정책 기조를 ‘신형 대국관계’에서‘신형 국제관계’로 전환한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신형 대국관계’가 기존 패권국가인 미국과 신흥강국인 중국이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자는 소극적인 내용이었던 반면, ‘신형 국제관계’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현안에 직접 개입하고 중재함으로써 상황을 주도하겠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죠. 국제무역에 있어서도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TPP를 탈퇴하는 사이 중국은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하고 RCEP를 적극 추진하여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거고요.
사실 시진핑은 2013년 취임 후부터 중국 주도의 다양한 국제질서를 모색해왔는데요 브릭스 정상회의를 활성화하고 여기에 개발도상국을 참여시켜 미국 주도의 G20 정상회의와 다른 한 축을 만들었고요.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 설립, 위안화의 국제통화기금 특별 인출권 통화바스켓 편입 등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질서에도 도전해왔습니다. 특히, 막대한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전 세계를 아우르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데요. 최근에는 북극 항로를 통해 중국과 유럽·대서양을 연결하는 ‘북극 실크로드’까지 일대일로를 확대시켰죠. 2018년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조 케저 지멘스 최고경영자가 “일대일로는 새로운 세계 무역기구가 되고 있다”라고 평가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미국의 TPP 불참 선언으로 중국이 RCEP를 내세워 영향력을 강화하자 일본은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TPP를 살려내기 위해 부심하고 있는데요. 아베 총리는 일본 쌀시장 개방 등의 초강수를 두면서 기존 회원국들의 이탈을 막았고, 결국 2018년 3월 교역물품 95%에 대한 관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TPP의 핵심 조항을 유지한 채 명칭만 바뀐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즉 CPTPP에 11개국의 서명을 받아냈습니다. 미국은 빠졌지만 CPTPP도 참여국 11개국의 GDP가 세계 경제의 13.5%를 차지하고, 인구는 EU보다 많은 5억 명에 달할 정도로 무시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은 RCEP에서도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요. 일본은 중국과 RCEP에 접근하는 기본 입장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은 관세장벽을 낮추는 데 주안점을 두는 낮은 단계의 협약을 조기에 체결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TPP의 경우처럼 노동자 인권이나 환경기준, 지적 재산권 등의 규정까지 포괄하는 높은 단계의 협약을 주장하고 있죠. 여기에는 호주도 일본과 비슷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어서 아무리 중국이라도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중국 정부 내에서는 CPTPP의 등장으로 인해 RCEP이 차질을 빚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등 CPTPP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요. RCEP과 CPTPP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호주, 말레이시아 등 7개국이 CPTPP에 더 우호적인 것도 골칫거리죠. 하지만, 지난 수년간 RCEP에 깊은 관심을 보이던 시진핑 주석이 이전보다 더욱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조기 체결을 강하게 밀어붙이면 상황이 예상보다 좋아질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문제는 미국, 중국, 일본 등 강대국들의 경제패권 다툼에 애매하게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나머지 국가들인데요. 우리도 그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는 일본 주도로 CPTPP가 부활하고 미국의 복귀 가능성까지 언급되면서 입장이 매우 복잡해졌는데요. 미국의 탈퇴 이후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TPP는 일본 주도로 부활한 반면, 비교적 적극적이었던 RCEP는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죠. RCEP는 회원국간 이해관계가 복잡하여 협상이 지지부진한 데다가 최근에는, 중국과 관계가 껄끄러운 인도가 시장개방에 난색을 표시함에 따라 당초 목표인 연내 타결이 거의 물 건너간 분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CPTPP에서 소외되면 자칫 경제적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커지고 있고요.
그러면, 앞으로 우리나라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경제적으로 보면 아세안 10개국이 참여하는 RCEP이 4개국이 참여하는 CPTPP보다 동남아 시장 확대 효과가 큽니다. 물론 그렇다고 RCEP에만 올인하고 CPTPP를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중국 견제 차원에서 CPTPP는 그 유용성이 크기 때문이죠. 한중FTA 체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국이 사드 설치 문제 등을 내세워 시행한 무차별 경제보복을 속수무책으로 당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제도나 신뢰만으로는 안되고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온 국민이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건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실익을 면밀히 검토하고 협상에서 충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FTA를 많이 맺는다고 잘 사는 게 결코 아니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