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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여행지, 삼각산과 백악산
    여행지 이야기 2021. 10. 19. 10:26

    가노라 삼각산아~다시 보자  한강수야 ’ 병자호란  (1636)  청나라로 끌려가던 김상헌이 지은 시조 인데요. 여기서  삼각산 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 혹자는 북한산과 같은 산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두 산이 동일한 산일까요? 만약 두 산이 같은 산이라면 왜 이름이 두 개인 것일까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 같은 지명도 막상 물어보면 헛갈리는 사례가 이외에도 제법 많습니다. 오늘은 몇 가지 질문을 통해서 서울 속 지명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지명의 역사에는 두 가지 큰 사건 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라 경덕왕 (757 때 모든 지명을 일률적으로 한자로 바꾼 것이고요. 또 하나는 일제의 창 지게명(1914)입니다일본은 창씨개명 (1940 전에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미명 아래 창 지게명을 꾸몄는데요 이 과정에서 유래를 잃어버린 숱한 지명 들이 생겨났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삼각산입니다삼각산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이렇게 세 개의 뿔로 이루어진 산 입니다. 한반도를 이루는 모든 산의 조상산(祖宗山)인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백두대간의 맥이 지리산까지 달려가는 중에 한강 북쪽 산줄기인 한북정맥을 형성한 것이 바로 삼각산인데요이를 일본이 북한산이라고 둔갑 시킨 것이죠. 1916년 경성제국대학 교수 이마니시 류가 조선총독부에 제출한 북한산 유적조사 보고서가 그 증거인데요. 그는 한양과 한강의 북쪽에 있는 산이니 북한산이라며 삼각산 대신 북한산이라는 지명을 보고서에 사용했습니다. 이후 삼각산과 북한산 모두 혼용됐지만1983 년 정부가 이 산 일대를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힘을 잃고 말았죠 .

     

    그런데 북한산이라는 이름 때문에 피해를 본 산은 비단 삼각산뿐만이 아닙니다. 바로  경복궁 뒤에 솟구쳐 있는 반쯤 핀 모란꽃처럼 생긴 봉우리 역시 많은 사람들이 북악산 혹은 북한산이라고 뭉뚱그려 부르고 있는데요 실제 이 산의 본명은  백악산 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면악, 공극산 등 다양한 지명이 등장하지만, 이후 500년 가까이 백악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산입니다. 이 산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조선의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도록 결정지은 중심산이기 때문인데요. 한양 천도는 풍수지리의 원리에 따라 백악을 주산으로 정하고 나서 산 아래 천하명당 혈 자리에 남쪽을 향해 경복궁을, 그리고 좌우에 종묘와 사직을 두기로 하면서 현실화됐습니다. 백악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꼭대기에 진국 백(鎭國伯)이라는 여신을 모신 백악 신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요. 사실 백두산, 태백산이 그렇듯 산 이름에 밝다, 또는 으뜸이라는 의미로 흰 백() 자를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백악산의 뜻을 풀어보면 흰머리를 인 으뜸가는 산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북() 자는 다릅니다. 우리 민족은 북쪽을 향해 머리를 두지 않을 정도로 북쪽을 금기시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근대 이후 만들어진 대부분의 지도와 책에는 북악이라는 지명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백악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의미를 모른 채 북악산이나 북한산이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후 백악의 수난은 계속됐는데요. 조선총독부와 총독관저가 경복궁 뒤 고려 이궁 터에 들어왔고정부 수립 이후에는 경무대와 청와대가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백악이라는 이름 대신 경무대 뒷산이나 청와대 뒷산이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더구나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에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산이 됐고, 북악 스카이웨이와 북악터널이 상류층의 드라이브 코스나 요정 가는 길로 인기를 끌면서 북악이라는 지명의 사용 빈도가 더 높아졌습니다.

     

    다행히 문 화재청은  2006 년 숙정문을 다시 개장하면서 백악 신사가 있던 산마루에  ‘백악산  342m 라고 새긴 돌비석을 세웠습니다 2009년에는 백악산을 국가지정 명승 제67호에, 삼각산을 명승 제10호에 올리면서 공식적으로 백악산, 삼각산이라는 이름을 되살렸죠 .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 국민 열 명 중 아홉 명이 백악은 북악, 삼각산은 북한산이라고 부릅니다. 안내 표지판과 안내책자, 역사책에도 여전히 그렇게 적혀 있죠. 이름을 찾은 건 다행이지만 우리가 제 이름으로 불러야 산의 영험함이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오늘 말씀드린 두 산의 지명 외에도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지명과 합쳐지거나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변질되거나 멸실돼 버린 지명들이 많습니다. 사람에게 성명(姓名)이 역사이고 정체성이듯 땅에게는 지명이 역사이고 정체성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이름에 관심을 가져보십시오. 우리가 놓친 새로운 역사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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